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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08.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 013. 비밀데이트

알록달록 또 하나의 추억이 되길



"쉿, 비밀이야."

로 시작한 오늘의 데이트 멤버는 나와 딸래미. 첫째를 서운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종종 하던 둘만의 데이트는 어느 시점인가 뜸해진 차였다. 오랜만이기에 행선지도 과감하게 롯데월드로 출발.


어린 소녀였던 내가 처음 롯데월드를 간 것도 딸래미와 같은 5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복잡하고 사람 많고 화려한 그 놀이공원은 내 눈에 너무나도 넓었었다. 퍼레이드의 행렬은 끝이 없고 놀이기구는 백개쯤 되는 듯했다. 풍선과 솜사탕, 팝콘 냄새와 형형색색의 장난감들.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화려했던 그 느낌을 오늘의 내 딸도 비슷하게 느꼈을까?


겁쟁이 5살의 첫 회전목마는 진심으로 귀여웠다. 목마의 안전바를 너무 꽉 잡아서 손이 아프다는 딸. 눈빛은 어쩜 이리 마차에서 내린 어린 공주마냥 빛나는지. 아이의 표정을 보고 결심했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딸래미의 속도에 맞추기로. 시간 없다 빨리 가야 한다라든지 저기 줄이 없네 저거 타러 가자라든지 저거 재밌대 무서워도 한번 타보자 라든지 따위의 가이드라인을 세우지 않았다. 다행히 딸의 호기심은 발걸음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저 풍선 사고 싶어."

"저 인형이랑 사진 찍자."

"팝콘 먹을래."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는 그녀의 진행을 따라 나는 경호 겸 짐꾼으로 졸졸 따라다녔다. 운도 좋았다. 어린 공주가 가는 길은 대기가 적었고 사람도 적었다. 우리가 떠나면 사람들이 몰렸다.

"딸, 타이밍 예술이다."

"그게 뭔데 엄마?"

퍼레이드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일, 적당한 길이의 때 이른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까지 마주치다니! 산타 할아버지, 꼬마 요정님, 루돌프까지 미리 크리스마스!

"엄마랑 둘이 오니까 너무 좋다."

몇 번이나 이 말을 하며 웃는 아이를 보니 짠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온갖 복합적인 생각들이 뭉치가 되어 내 마음을 굴러다녔다.


사실 매사 첫째만 서운한 건 아니다. 둘째도 서운한 게 백만 가지일 게다. 오늘도 둘이 놀러 나갔다 온 걸 모를 리가 없다. 말에서 행동에서 얼마나 티가 났을까. 그래도 우리 둘의 얼굴을 보고 어디 다녀왔어. 왜 나만 빼고 갔어. 이런 투정 한마디 없는 둘째 아들을 마주하니 또 기특하다. 이제 갓 36개월 지난 4살인데. 누나가 들고 온 너구리 팝콘통이나 양손 가득 쥔 사탕 봉지 등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냥 누나 나도 하나 줘 이런다. 딸래미는 더 기가 막힌다. 엄마랑 둘이라서 너무 좋다던 이 아가씨는 "이 데이트 비밀이야" 한 마디에 팝콘을 어디에서 샀는지, 인형을 어디에서 샀는지 동생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제 고작 5살인데.


두 분의 클라이언트에게 최대의 행복과 최소의 서운을 동시에 선사해 드려야 하는 연년생 엄마라는 직업. 007 작전으로 진행되는 비밀데이트도 두 분에 대한 영업 성과를 높이는 계획 중 하나다. 온몸과 온 맘을 바치는 계획이라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몸은 탈진 직전이긴 하지만서도.


오늘 찍은 사진만 봐도 공진단 열흘 치 먹은듯한 기운이 난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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