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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14.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 014. 사이즈

오늘과 내일이 같을 수 없는 너의 사이즈




아이들의 옷을 새로 사야 하는 시즌이다. 작년에 입던 패딩들과 두꺼운 겨울옷들을 꺼내 놓고 또 한 번 깜짝 놀라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은 옷을 어떻게 입었지?"

소매는 짧아져서 손목이 쑹덩 나오고, 바지도 짧아져서 똥꼬바지가 되었다. 

"엄마, 답답해."

어김없이 이번 계절의 옷장 정리도 '새로 살 옷 목록 만들기'로 바뀌고 말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내 옷을 이것저것 사 오면 아빠는 늘 잔소리였다. 무슨 옷을 그렇게 매번 사느냐고. 하지만 이제야 나는 알았다. 그건 직접 입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라는 걸. 4월에 입었던 아이의 봄옷을 9월 초에 입혀야지 하고 서랍에 잠시 넣어 놓으면, 옷장 요정이 옷을 쭉쭉 빨아먹기라도 하는지 반뼘이나 줄어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아니. 고작 5개월 만에 아이가 그만치나 쑥 자란 걸 깨닫는다. 유난히 발부터 빨리 자라는 딸아이는 올해만 신발 사이즈를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의 옷이 유난히 빨리 많아지고 또 쌓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하는 아이들의 사이즈를 따라가려면 이것저것 사거나, 얻거나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들은 순식간에 쌓인다. 아이 옷은 많아질 수밖에,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는 아이에게 옷을 직접 입히는 양육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다. 우리 아빠처럼. 


아이들의 사이즈를 가장 절실히 깨달을 때는, 안아 올릴 때다. 시간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아이의 발끝은 내 허리에 있다가, 내 골반에 있다가, 내 허벅지까지 내려온다. 길어지고 또 무거워진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잠시나마 양팔에 아이들을 안아 올렸는데. 지금은 그리 했다간 119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사이즈가 달라지면서 혼자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는 아이. 팔이 길어지면서 높이 있는 양치컵과 칫솔을 잡을 수 있고. 정수기 밑에 발판을 놓지 않아도 혼자 물을 따라 마실 수 있고. 미끄럼틀을 기어올라 갈 때 잡아주지 않아도 해낼 수 있고. 내 뱃속에서 태어나 나와 점점 분리되어 간다는 이 기특하고 섭섭한 기분은 막연히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이는 거란 걸 요즘 들어 많이 느낀다. 


아이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아이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육아 전문가의 말이었던 거 같은데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언젠가 나보다 더 커지고 무거워질 아이들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조용히 사진첩을 뒤적이며 그땐 그랬지라며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밤, 당장 커버린 아이의 새로운 옷을 고르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기쁘다. 아이를 낳고 이제야 조금 엄마 모습이 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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