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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18.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015. 머리카락

내가 머리카락 치우기에 혈안이 된 이유



집 안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면 못 참는 편이다. 물론 전에는 안 그랬다. 적당히 몇 개 흘린 건 슬쩍 구석으로 밀어놓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나의 적이다. 


시작은 기어 다니기 시작한 첫째 아이를 안아 올렸을 때였다. 아이의 작은 무릎에 긴 머리카락(아마도 내 것) 몇 가닥이 내복 바지에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블랙리스트 상위권에 머리카락이 올라갔다. 첫 아이라서 순수하고 새하얀 천사 같다고 늘 생각하던 내 눈에 그런 시커먼 게 붙어있으니 마음이 언짢아진 것이다. 

"이거 집어서 먹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때부터 시작된 머리카락 치우기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젠 아이들도 얼추 커서 본인들이 머리카락을 주울 정도니 몇 가닥 굴러다닌다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 한 번 굳어진 습관이 참 바꾸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아침마다 청소기를 윙윙 돌리고 욕실 바닥을 훔친다. 나도 머리가 길고 딸아이도 머리가 길어서 다 치우고 나서 보면 한 줌 가득이다. 



내 핑계는 이렇다. 아이들 놀 때 머리카락이 장난감에 끼어 있다거나 발바닥에 붙는다거나 하면 방해되고 지저분하니까 미리미리 치우는 거다,라고. 그런 내 영향인지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면 주워서 나에게 주거나 휴지통에 버린다. 그냥 구석에 밀어 두진 않는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커서 지저분하다 소린 안 들을 것 같으니 다행인 건가. 


그래도 우리집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지만, 우리집이 아닌 곳의 머리카락은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다. 남의 집에서 머리카락을 줍고 있으면 뭔가 너무 깔끔 떠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보면 안 줍기가 힘드니 모른 척 눈을 돌려버리는 거다. 휴-


오늘 아침에도 딸아이의 머리를 빗으며 바닥에 한 줌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졌다. 유치원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일단 모른 척하고 서둘러 나갔지만 돌아와서 한 일은 바로 청소기 돌리기였다. 어쩔 수 없다. 이젠 그냥 인정해야지. 애들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머리카락이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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