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드카피 Nov 04.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012. 반지

포기할 수 없는 나와의 약속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첫째가 태어나면서 주렁 거리던 내 손과 목은 순식간에 심심해졌다. 반지는 아이에게 긁힐 수 있고 목걸이는 아이가 잡아당겨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잠시 안녕을 고한 것이다. 그 안녕이 5년이나 계속될 줄은 몰랐지만.


액세서리 없는 손은 생각보다 편했다. 운동화에 익숙해진 발처럼 나는 심심한 손에 익숙해졌다. 결혼반지도 잊고 살던 어느 날, 마트에 있는 액세서리 매대 옆을 지나다가 첫째가 눈을 반짝였다.

"엄마, 이거 예쁘다!"

하늘색 토끼가 깜찍하게 붙어 있는 플라스틱 반지였다. 토끼 반지를 작은 손가락에 끼고 이리저리 돌려보는 딸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손을 내려다봤다. 아, 나도 반지 낀 지 참 오래됐구나. 아이에게 반지를 사주고 집에 돌아와 결혼반지를 꺼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긁힐 일도 없으니 다시 반지를 껴도 될 터였다. 살이 빠졌는데 살짝 헐거워진 반지의 느낌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그새 딸아이가 쪼르르 쫓아왔다.

"엄마도 반지 있어?"


아이와 함께 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걸 뜻하기도 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다. 그렇게 하나둘씩 내려놓다 보면 내 자신이 너무 가벼워져서 허전해지고 공허해지기도 한다. 그 틈을 엉뚱한 생각으로 채워나가다가 엄마 금쪽이가 되어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경우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구체적으로 약속을 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한 달 후에 다시 만나. 일 년 후에 다시 만나. 지금은 저녁 약속을 잡을 수 없지만 아이 돌이 지난 후에는 친구 모임에 나갈 거야. 지금은 여행을 포기하지만 내년에는 제주도를 갈 거야. 지금은 구두를 신지 않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구두를 다시 신을 거야.


몇 년에 걸쳐 하나씩 포기했던, 이젠 기억에 가물가물한 여러 가지 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예전처럼 반지를 끼고 다닌다. 결혼할 때는 남편과의 약속이었고 지금은 나와의 약속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되었다. 난 내 이름 세자를 지우고 엄마가 된 게 아니라 엄마라는 직업에 몸 담고 있는 거라는 약속. 엄마의 휴가기간에 휴직기간에는 다시 내 이름 세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약속 말이다.


지금 딸아이의 작은 플라스틱 반지는 장난감이 되어 놀이방 구석을 굴러 다니고 있다. 딸아이보다 나에게 참 고마운 장난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몇 살이야_011. 손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