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공주 왕자, 그럼 나는?
딸아이가 처음으로 파마를 했다. 공주가 되고 싶단다. 구불구불한 머리는 흔들면서 자기는 작은 공주란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소리하면서 공주 하겠니 싶었다.
아이들 바라보며 문득 나의 나이 한 자릿수 시절이 떠올랐다. 멋 모르고 그냥 깨방정 떨던 그 시절. 그 시절의 나를 표현하자면 발랄함이었다.
그리고 10대를 생각해 봤다. 새로운 것을 머리로 마구마구 집어먹던 시절이었다. 상관없이 용감하고 이유 없이 자신감 넘치고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던 그때. 그냥 하고 싶은 걸 향해 뛰기만 하면 되고 대부분 성공하던 그때. 10대의 나는 똑똑함이었다.
20대는 무엇이었을까. 뒤늦은 사춘기로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게 10대가 아닌 20대 시절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붙어서 기고만장했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10대 때와 달리 높은 벽들이 있었고 거기에 한 번씩 두 번씩 부딪히면서 아팠다. 그래도 내가 해결할 거야 라며 부모님을 속상하게 했던 시절. 회사일이 힘들어도 바보같이 힘들어 소리 한 번 안 하던 시절. 20대의 나는 철없음이었다.
30대는 생각할 것도 없다. 바쁨이다.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퇴직을 하고 연년생을 키웠다. 그리고 5년쯤 지나자 30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눈코뜰 새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10년을 열흘처럼 보내고 나니 30대가 좀 아쉽기는 하다. 거울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게 싫다. 그래도 30대 중반까지는 자고 일어나면 반들반들했던 거 같은데. 한 며칠 동안 시무룩해있다가 그냥 나답게 결심했다. 그래 가지고 태어난 걸로 근 40년 살았으면 앞으로 40년은 내가 만들면서 살아야지 뭐.
어떤 드라마였는지 생각은 안 나는데 일본 드라마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이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될 나이야."
나이 든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면 주름에도 성격이 드러난다. 웃어서 생긴 주름과 화를 내서 생긴 주름은 확연히 다르다. 멋지게 나이 드는 건 이제 내가 어떤 성격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사느냐에 달린 일이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 그때가 벌써 나에게 온 것이다.
만 나이 말고 대한민국 전통 셈 나이로 2023년, 39세다. 40대를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목표한 40대의 수식어는 빛남. 10대 때 무모했던 당당함 말고 이유로 가득 찬 당당함을 앞세워서 빛나는 게 목표다. 디테일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