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놓은 에너지들을 줍줍
아침에 후다닥 유치원 버스가 떠났다. 이제 아이들의 반자리는 온전히 엄마인 내 몫이다. 제일 먼저 놀이방으로 향한다. 그저께 블록으로 자동차 만든 걸 정리한답시고 분리했다가 혼쭐이 났었다. 이번에는 만들어 놓은 것 고대로 한켠에 밀어 놓는다. 그것도 잘 보이게 밀어 놓는다. 엄마의 정리 기술은 이런 데서 나온다. 잘 보이게, 그러나 너저분하지 않게. 놀이방에 널린 장난감들을 하나씩 치운 후 잘 정리됐는지 다시 한번 돌아봤다. 음 합격.
서재에 놓인 내 작은 책상은 이제 큰 아이의 차지다. 다리가 길어지고 의자가 맞으니 놀이방 앉은뱅이책상보다 마음에 쏙 드나 보다. 노트북 하나 달랑 올려져 있던 책상은 이제 알록달록한 낙서들이 가득한 책상이 되었다. 엄마, 아빠, 동생, 공주님, 왕자님, 요정들... 본인이 알고 있는 온갖 캐릭터들의 왕국이다. 어제 그리다 만 그림이 눈에 띈다. 공주와 왕자가 같이 소풍을 간 거라고 추측된다. 도시락도 있다. 메뉴는 불분명하다. 없어지기라도 하면 잠시 후 난리가 날 테니 책상 한가운데 잘 놓아둔다.
안방 침대 위 이불들을 들어서 툭툭 털어내니 작은 장난감이 툭툭 떨어진다. 밤새 손에 쥐고 잔 장난감들이 아침에 주인을 잃고 이불속을 헤매고 있었다. 자면서도 장난감의 온도를 느끼는 건지, 둘째는 자다가 손에서 장난감을 놓치기라도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 귀여운 목소리로 장난감을 찾는다.
"어디 써 어디 써."
아빠는 모르는, 엄마만 알 수 있는 이 모습도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식탁 위에는 먹고 남긴 아침의 흔적이 너절하게 남아있다. 빵가루, 남은 우유, 베어 문 사과 등등. 치우기 귀찮다는 생각 대신 더 먹었어야 하는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6년 차 엄마가 맞긴 한가보다. 정리하는데도 도가 텄다. 담을 건 담고 버릴 건 버린다. 내 커피물까지 동시에 끓인다. 엄마가 된 후 저녁 시간 한정으로 손도, 발도, 귀도, 입도 정확히 두 배로 늘었다. 두 아이의 말을 동시에 듣고 각각 대답하면서 손 발은 또 다른 일을 해내고 있다. 가끔 스텝이 꼬이기도 하지만 다시 정신 차리는 시간 역시 빨라졌다.
청소기까지 윙윙 돌린 후, 잠시 소파에 앉아 두리번거린다. 작은 사람 둘이 없을 뿐인데, 소리도 온도도 너무도 다르다. 그 작은 몸들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지 빈 공간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머물렀던 공간들을 정리하는 일은 이제 내 하루를 단정하게 시작하는 루틴이 되었다. 오후 4시부터 다시 시작되는 에너자이저들의 소리와 온도를 상상하며 그 사이 시간을 야무지게 쓰려는 노력이다. 에너자이저들이 남겨놓은 흔적들로 나의 에너지를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무튼 신기하다. 아이들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나에게 힘이 된다. 병 주고 약 주고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뭐 어떠랴. 결국 웃게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