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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an 10. 2023

023. 아이의 생일에 엄마를 자축하며

지켜내느라 수고했다 나야



첫 아이의 5번째 생일이다. 벌써 6살이 되었다고 좋아한다. 6월에 되면 다시 5살이 되는 거야 라는 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사달라고 일주일 전부터 말하던 포켓몬 장난감을 잊지 않은 아이는 아침에 일어난 순간에도 유치원 하원하는 순간에도 나에게 묻는다. 

"왔어?"


아이가 오늘 하루종일 포켓몬 장난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이리저리 분주했다. 주문해놓은 케이크를 픽업하고 장난감 외에 또 다른 선물을 고르기 위해 아트박스에 들렀다. 고심하며 생일 카드를 고르고 집에 서둘러 돌아와 몇 글자를 적었다. 고마워 사랑해 축하해들이 담긴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카드를 봉투에 넣었다. 스티커도 붙였다. 포켓몬 장난감 택배가 제 때 오지 못할까 봐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고 초조하게 배송조회를 반복했다. 저녁 식사를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짜장면 탕수육 세트로 결정해 버렸다. 그래 엄마가 만든 건 매일 먹으니 오늘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걸로 하자.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티니핑 얼굴이 그려진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짜장면을 나눠 먹고 간신히 시간 맞춰 와 준 장난감 선물을 열었다. 함께 웃었다. 아이가 가장 크게 웃었다. 저녁밥도 먹다 말고 거실에 엎드려 장난감 삼매경이 되었다. 둘째에게 미리 말해놓은 덕분에 첫째는 동생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혼자 장난감을 독차지하고 놀았다. 그리고 좀 전에 잠들기 아쉬워하는 아이를 살살 달래 가며, 손안에 포켓몬 두 마리를 쥐어주며 잠을 재웠다. 이렇게 오늘 아이의 5번째 생일이 마무리되었다. 


아이에게 5번째 생일은 내 삶이 변한 5번째 해이기도 하다. 상상도 못 했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보다 더 빡센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딱 5년이다. 그 사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도 일 년을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달라졌다.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데 능숙해졌다. 나의 아픔을 미루는데도 익숙해졌다. 눈코 뜰 새 없는 5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시간의 공백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5분 10분, 30분이 생기자 그 시간이 그동안 바삐 움직였던 나에게 공백처럼 느껴졌다. 엄마 5년 차가 되자 다른 업무를 시작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마치 대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오늘 아이의 생일을 보내며 나는 승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 승진은 업무의 달라짐도 있지만 책임의 무게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로서의 승진은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책임들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제법 말이 통하는 아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 두려운 것과 호기심이 함께 얽혀있는 아이. 이제 엄마는 똥 치우고 침 닦아주는 것들에서 서서히 놓여날 때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하는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지켜봐야 할 때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승진이니까 오늘은 자축하려 한다. 아이들도 잠들고 남편도 잠든 이 밤에. 엄마의 승진을 자축하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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