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드카피 Mar 16. 2023

035. '너무 위험해'가 너무 심했나?

위험을 고지할 때의 딜레마



아침 등원 전쟁 중, 둘째 꼬꼬마 녀석이 현관 중문에 등을 대고 덜컹덜컹하고 있었다. 유리와 나무로 된 중문이 튼튼해봤자 얼마나 튼튼할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문 흔들면 위험해! 엄마가 문 위험하다고 했지?! 모든 문은 조심해야 해! 위험하다고!"

아이를 보낸 후, 내가 뱉은 문장을 다시 되뇌어 보았다. 저 문장 어디쯤에서 끊어야 했을까.


아이에게 위험을 고지할 때, 그 순간의 위험에 대해서만 강조하라고 했다. 일어나지 않는 거짓말(경찰이 와서 잡아간다 등)이나 너무 심한 공포심 유발(문짝이 너를 덮쳐서 너 죽으면 어쩌려고 등)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기준으로 생각하면 저 문장은 애매하다. 

문 흔들면 위험해! 이건 오케이. 사실이다. 

엄마가 문 위험하다고 했지?! 이건 과거의 말을 끄집어낸 것이니 굳이 할 필요 없었다. 

모든 문은 조심해야 해! 그럼 이건? 사실인가 과장인가? 뒤에 위험하다고를 반복한 건 또 어떠한가. 과장인가? 일상에서 대체로 아이를 혼낼 때 뱉는 문장들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오늘도 뒤돌아서서 곱씹고 고민하는 이유다. 


그래도 6년 차인지라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첫 번째 기준. '내가, 나의 엄마에게 저 소리를 들었을 때 납득할만한가'이다. 억울하거나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저 기준에서 따져보면 대체로 판단이 선다. 

두 번째 기준. '엄마 좋으려고 하는 소리인가, 진짜 아이를 위하는 소리인가'이다. 이건 대부분 놀이방과 식탁 위에서 발생한다. 클레이를 7~8개씩 꺼내놓고 신나게 밥알을 만드는 아이를 보며 30분 후 청소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때 만약 내 입에서 "책상 위에 놓고 해"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건 엄마 좋으려고 하는 소리다. 식탁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당연히 흘린다. 그리고 치우는 건 온전히 엄마몫이다. 그때 내 입에서 숟가락 똑바로 잡아야지" 같은 말이 나왔다면 그것 역시 엄마 좋으려고 하는 소리다. 결국 아이를 훈육하고 혼낼 때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과 제스처는 엄마인 나와 뒷감당해야 하는 나의 싸움인 거다. 


다시 중문 얘기로 돌아오면, 아이를 보내고 중문을 흔들어 봤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이는 16킬로다. 5살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세게 툭툭 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또 생각한다. 다른 문이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약한 유리문이었다면? 고장 나기 일보 직전의 문이었다면? 다른 곳에서 또 등으로 문을 툭툭 흔들다가 큰일 날 수도 있는 거다. 속으로 또 한숨이 쉬어진다. 그래도 아까 그 문장에서 절반은 덜어냈어야 했나 아닌가. 


엄마 하기 너무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034. 아이가 없는 아이의 공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