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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28. 2023

040. 수면독립의 날

처음으로 각방 쓰는 이 시각의 두근거림이란


시작을 이러했다. 함께 자던 패밀리 저상형 침대 밑이 심하게 삭아 있는 걸 발견한 것. 성급한 마음에 케어받는 침대 먼저 질러버렸다. 시간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뤄왔던 아이들의 방 만들기 2주 급행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미션 1. 기존 남편의 서재를 거실로 끌어내기

미션 2. 계획했던 거실형 서재 만들기

미션 3. 아이들 놀이방을 두 개로 분리하기


결과적으로 모든 걸 2주 만에 끝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거실형 서재 만들기였다. 거실의 TV는 포기할 수 없었고 그러자니 책장의 단가가 두배로 뛰었다. 책장 중간에 TV자리 마련하는 게 이렇게 비싼 일인 줄 처음 알았다. 14일의 시간 중 5일가량을 책장 뒤지는데 소비해 버렸다. 남편은 이건 도저히 2주 안에 될 일이 아니니 침대를 미루라고 했다. 그 와중에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나 역시 그러했다. 


광고일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있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

광고주가 내일 만들어주세요 하면 우리는 맞췄다. 광고주가 우주에서 달을 따달라고 하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냈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낸 짬바가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가성비를 포기하고 책장을 선택하자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거실에 놓을 남편의 새로운 책상을 선택하는 데에도 마찰이 많았다. 가격과 퀄리티 모두를 충족시키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세팅을 했다. 모든 요소들의 날짜를 쪼으고 쪼아서 맞춰나갔다. 책장 설치도 침대가 들어오는 날에 맞추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손은 모자랐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나는 버려야 할 가구들을 혼자 옮길 힘이 없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렇게 폭풍 같은 14일이 흐르고 지금이다. 부랴부랴 어제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혼자 잘 수 있을까를 염려했다. 사실 그 염려를 가장 먼저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직 커튼이 도착하지 않았고 아이들 방에 러그도 깔아야 한다. 하지만 아까 유치원에서 돌아와 엄마가 산타의 선물처럼 쨔잔! 하고 선보인 자신들의 방 안에 뛰어 들어가 방방 뛰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렇게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내 14일간의 어깨결림 마음 졸임이 싹 사라져 버렸다. 


둘째는 아직 나와 함께 자는 걸로 결정했다. 대신 둘째 본인의 방에서 엄마와 자는 걸 선택했다. 당분간 안방의 주인은 남편이 될 듯싶다. 첫째는 둘째 앞에서 자신의 씩씩함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나에게 연신 잘 자요 뽀뽀를 날리고 본인의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끝에는 내가 들어가서 재워주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별 탈 없고 평화로운 밤이다. 둘째는 늘 그렇듯 일찍 잠이 들었고 내가 제 옆을 빠져나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사이 첫째를 재우고 다시 방을 빠져나와서 지금. 완전한 수면독립은 아니지만 한 걸음 나아간 느낌이다. 수면은 꽤나 긴 시간을 요구한다. 8시간~9시간 정도 첫째는 (아직 둘째는 아니고) 나와 떨어진 시간을 보내게 될 터다. 잠들기 전 계속 나에게 물었다.

"엄마, 원래 처음은 무서운 거야?"

그 물음을 들으면서 나의 첫 번째 5살 혼자였던 밤을 떠올렸다.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무서웠던 것 같다. 

"응. 원래 무서운 거야. 그래서 엄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난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수면독립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첫 번째 단계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서서히 내 곁을 떠나 하나의 자아로 서게 될 아이를 떠올려본다. 뭉클하고 뿌듯하고 섭섭하고 아리송한 이 기분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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