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 밤의 문을 닫는 시간

“수면은 도망이 아니라, 복귀다. 잠들 때마다 나는 나에게 돌아온다.”

by 차가운무스탕

내 수면에는 ‘패턴’이라는 것이 없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뒤섞여 있었다.
새벽 1시에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그제야 비로소 내 시간이 시작됐다.
세상이 잠든 시간, 나는 모니터를 켜고 개인 업무를 했다.
논문 초안을 수정하고,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고, 누적된 메일을 정리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새벽 3시쯤, 의식이 흐릿해져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꺼풀은 무거운데, 머리는 아직 긴장 상태였다.
결국 3시가 넘어야 겨우 침대에 몸을 눕혔고,
7시 반이면 다시 출근해야 했다.
자율신경의 리듬은 완전히 깨져 있었다.
낮 동안엔 피로와 긴장의 경계에서 버텼고,
밤에는 긴장이 풀리지 않아 잠들지 못했다.


그런 생활이 몇 년을 이어졌다.
낮엔 타인의 시간, 밤엔 나의 시간.
그 균열의 틈에서 몸은 점점 무너졌다.
그땐 몰랐다. “밤을 돌려줘야 낮이 회복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든 일을 내려놓은 후에야, 처음으로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나는 강제로라도 멈춰야 했다.
처음엔 낮에도 졸음이 밀려왔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고개가 떨어지곤 했다.
그 졸음은 피로의 신호이자,
몸이 제 리듬을 되찾으려는 ‘회복의 졸음’이었다.


밤이 되면 이전과 달랐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11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아침이면 내 몸이 스스로 눈을 떴다.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순간,
“지금이 일어날 때다”라는 신호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몸이 다시 ‘자기 시계’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약의 효과가 아니었다.
그건 자율신경이 제 리듬을 되찾는 신호였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다시 교대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밤에는 부교감신경이 지배하며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아침에는 교감신경이 천천히 깨어나 하루의 활력을 준비한다.
그건 마치 오케스트라가
다시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연주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밤 11시가 되면 조명을 낮추고, 컴퓨터를 끄고, 핸드폰을 멀리 두었다.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밤의 문을 닫는 의식”이었다.
하루 동안 흩어진 신경의 파편들을 모아,
몸과 마음을 ‘쉼’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향기는 그 의식의 마지막 순서였다.
라벤더와 시더우드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
조용한 디퓨저에 피웠다.
그 향이 방 안을 채우면, 공기가 바뀌었다.
라벤더는 긴장을 풀어주었고, 시더우드는 땅의 냄새를 닮아
마음의 중심을 다시 붙잡아주었다.
그 향기 속에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밤에게 맡긴다.”


자율신경의 회복은 거창한 치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일상 속 리듬의 회복’이다.
시간을 고정한다는 건, 단지 시계를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게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걱정하지 마, 내일도 같은 시간에 깨어날 거야.”
그 약속을 매일의 리듬 속에서 반복하면,
몸은 어느새 그 말을 믿는다.


이제 나는 알람소리를 듣지 않는다.
아침의 빛이 내 몸을 깨운다.
온전히 내 리듬, 내 신경의 속도, 내 호흡의 시간으로 깨어난다.
그건 회복이 아니라 ‘복원’이었다.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밤, 나는 내 몸의 문을 잘 닫을 수 있을까?”
그리고 향기 속에서 조용히 대답한다.
“그래, 오늘은 괜찮아. 이제 쉴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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