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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Dec 21. 2020

오늘 치킨 시킬까?-치킨의 군중 심리학



엄마의 궁시렁을 참아가면서도 굳이 치킨을 시킨 이유는 야식은 치킨이라는 내 마음속의 공식 때문이었다. y는 영원히 f(x)이니까. 과연 이 공식은 나에게만 적용될까? 몇 년 전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야식으로 치킨이 꼽혔다. 설문 대상자중 80%에 다다르는 응답률이니 가히 압도적이다. 배달음식이라면 중식인데, 이는 5% 미만으로 선택되었다. 라면이나 피자도 있지만 이들도 기껏해야 30% 중후반에 머물렀다. 이런 형국이니 ‘치킨은 하느님’, 곧 ‘치느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남들이 먹으니까 나도 먹고 싶다? 보편성에 대한 심리적욕구는 여기서 발현된다.


특히 한국인의 보편정서를 함축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은 군중의 한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우리네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쯤 1940년대초 심리학자들은 앞다투어 어떻게 히틀러식 전체주의가 전쟁을 일으켰는지, 그 기저에 있는 군중심리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그리고 독보적인 성과를 낸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였다. 그에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밑바닥은 실력과 같은 생리적 욕구이다. 밑의 단계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욕구로는 올라 갈 수 없는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인간은 굶주린 배를 채워야 그 다음에는 안전을 생각하고 또 그 다음에는 애정과 소속(belongs)에 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일명 맛선생이라 불리는 황교익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내가 남과 다른 사람으로 배척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모두가 먹는 것을 내가 선택하는 것. 그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안다. 곧 나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이며 내가 그들 안에 속해 있다라는 소속감 또한 소속(belongs)에 대한 욕구가 음식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대중적 야식인 치킨을 시킴으로써 나는 1단계-배고픔의 욕구, 2단계- 안정의 욕구, 그리고 3단계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를 모두 충족시켰다. 남은 건 4단계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5단계 자기실현의 욕구이다.


과연 치킨으로 나는 매슬로우가 말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엄마의 질타를 뒤로하고 식탁에 치킨을 펼친다.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맛의 지존, 교본의 반반이다. 튀김 옷이 싸인 닭 껍질을 앞니로 바사삭 뜯어내니, 그 안으로 촉촉한 닭의 속살이 드러난다. 물엿에 조린 간장의 맛이 살코기 안까지 베어 짭조름하게 달짝지근하다.



적당히 빨간 양념치킨도 또 한입, 아니 닭다리를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우걱우걱 턱관절을 몇 번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니, 쏙 하고 뼈만 남아 내뱉는다.




언젠가 마동석의 치킨 CF와 똑 같은 모습을 연출해 냈다.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내가 나인 것이 뿌듯한 순간이다. 다른 부위들 또한 엑스레이로 닭을 찍어 뼈만 보이는 그 상태들을 연출하면서 이빨로 싹싹 긁어 먹는다. 퍽퍽한 살은 먹지 않고 편식했던 과거에 비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이다.이로써 나로부터의 존경과 발전을 이루어내, 실로 치킨은 나로 하여금 매슬로우의 5단계 차근차근 충족하게 하였다. 이리 자아실현을 한번에 시키는데 어찌 치느님이 아닐 수 있겠는가. 배가 고파서 맛있어서, 먹는게 아니라 자아의 심리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함이라고 나는 오늘 치킨을 먹으면서 이를 증명했다. 역시 이론은 경험으로 입증된다.


(내돈내산) 교촌 오리지널 반반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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