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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r 28. 2021

파리의 잠봉뵈르- 김영모의 품에서 찾다

펍과 맥주의 도시가 런던이라면, 파리는 카페와 빵을 위한 곳이다. 난생처음 파리에 갔을 때 빵순이의 마음은 대학입학 새내기때 처럼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 찼었다. 파리에 가면 내가 알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맛난 빵들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고 하나하나 전부 다 맛 볼 것이기에 검색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저녁 때쯤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구경하며 파리 외곽의 공항, 샤를드골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프랑스는 야식문화가 발달해 있기 않기 때문에, 정통 프랑스 빵은 내일 아침에 먹는 걸로 스스로에게 약속하며 꼬르륵 소리를 감내하며 잠이 들었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첫날 역시 새벽 6시에 일어난다. 배가 고팠지만 호텔 아침은 7시 부터다. 편의점도 없는 유럽에서 이 시간에 연대가 있겠어 하며 커튼을 여는 순간,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주황색 불빛이다. 아 저 따뜻한 불빛은 분명 빵집인데, 아 설마 이 시간에 열겠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딱히 할 일도 없기 때문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갔다. 오직 그 불빛만을 쫓으며 도착한 곳은 역시 빵집 겸 카페, 빵순이의 촉이 제대로 맞은 순간이다. 속으로 환호를 부르며 빵들을 구경하러 빵들이 진열된 빵집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트는 순간, 한 종업원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날 야외 카페로 안내한다. 내가 아는 불어 세 마디는 이 상황에 쓰지 못하기 때문에 얼떨결에 카페 테이블에 앉았다. 곧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불어다. 천천히 또박또박 콩글리쉬로 영어 메뉴가 있냐고 물었다. 불어로 그 종업원이 내게 솰라 솰라 한다. 뭐 없다는 의미겠지. 하며 메뉴판을 자세히 보기 시작한다. 할렐루야!!! 그림이 있다!!! 바게트 빵 옆에 돼지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르쳤다.


5분도 되지 않아 가져온 커다란 바게트 속에 햄 있는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었다. 아 빵의 나라 프랑스에 왔는데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양상추, 토마토, 햄, 치즈 뭐 갖가지 맛있는게 다 들어있는 뚠뚠이 샌드위치도 아니고 겨우 햄 두어장에 버터 조금? 이게 뭐람? 크게 실망해 한숨을 쉬니 종업원이 와서 또 말을 시킨다. 나는 오케이를 손가락으로 만들며 현란한 바디랭귀지로 찰거머니 같은 그놈을 떼어는데 성공했다.


이왕 시켰으니 먹자, 하는 마음으로 큰 바게트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작게 만든 다음 한입 깨물었다. 뭐야? 이게 뭐야? 맛있잖아? 고작 햄 두어장 든게 뭐라고 이게 맛있어? 바게트는 바삭바삭 아니 빠삭빠삭 했고, 안의 속살은 구멍이 송송 난게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빠아삭 바게트를 씹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면 잘 훈제된 햄의 풍미가 코 끝을 자극하고 버터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혀에 안착한다. 이까짓 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프랑스에 있는 내내 이것만 먹을 결심을 했다. 다른 크루아상이니 타르트니 다 필요 없었다. 이거 하나면 족했다.


아 참! 이름을 알아야 또 먹을 수 있을 텐데, 메뉴판을 달라고 말 할 수 없기에 몰래 카운터 쪽으로 가서 메뉴판을 펼쳐 들고 초초초 집중력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제이 J, 에이 A, 엠 M, 비이 B,오 O, 엔 N, jambon 그리고 뵈르 beure. 잠봉 베에르? 호텔로 돌아와서 찾아보니, 잠봉은 돼지고기고 뵈르는 버터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잠봉 뵈르의 그 첫 맛, 한국에 돌아와서 찾을 길이 없었다. 여기저기 잠봉뵈르 맛집이라고 하는 데를 몇군데 가보았지만, 그 맛을 떠올리면 다들 부족하기 일 수여서 포기한지 오래였다.


몇 일전 서울 3대빵집이라고 불리우는 김영모과자점에 갈일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잠봉뵈르가 눈에 띄었다. 맛있을까 하며 한참을 서있으니, 종업원이 와서 묻는다. “이거 하나 드릴까요?” 아 어떡하지 하다가 그래 맛이나 보자하며 집으로 데려왔다. 어차피 그맛은 안날 테니까….하며 덥썩 무는 순간 파리의 그 바삭함이 입천장에 다시 전달 된다. 잊고 있었던 그 빠삭함… 천장이 다 까져 피가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빠삭빠삭이 여기 있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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