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받는 게 두려운 나..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feat. 유시민 그리고 고미숙)

by 이승민

글쓰기는 내 업(業)이다. 업(業)이라고 하면 남이 돈을 주고 살만큼 좋은 글을 많이 써야 한다. 좋은 글은 쓰는데 한 달에 한 문단밖에 못쓰거나, 하루에 너덧 장은 너끈히 써 재끼는 데 내용이 별로면 먹고살기 힘들다. 써 놓고 보니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이며 내 삶의 궁핍한 이유를 깨닫는다. 몇 달에 겨우 논문 한 편씩 쓰니 어찌 곤궁하지 않겠는가. 논문으로 나올 정도니 내용은 그렇다 치자.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글이 빨리 많이 나와야 한다. 글이 더디게 나오는 이유를 손꼽아 봤다. 꼽다 보니 너무 많아 발가락까지 구부려야 했지만 하나씩 펼쳐보며 천착하니 ‘억압심리’로 귀결되었다.


글쓰기는 자기표현이다

글쓰기 일타강사 유시민은 여기 덧붙여 말했다. “모든 예술 활동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슬플 때는 쓸쓸한 단조를 연주하고 기쁨은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운 리듬을 탄다.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음악가다. 글쓰기도 언어를 통해서 자아를 표현하는 예술 활동이다. 자신의 감정, 생각 혹은 경험에 대해 글로 표현하는 게 글쓰기이다. ‘언 듯 나에 관해 쓰면 되겠네’ 하고 쉽게 생각했지만 나 같은 트리플 A형인 극소심한 자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자기표현”은 선험적으로 “자기표현 욕구”에서 나온다. 기행문을 쓰고자 한다면 어딜 다녀왔고 거기서 무엇을 겪고 느꼈는지 등을 표현해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욕구” 가 있어야 한다.


“땡… 땡…” 여기서 내 밥그릇에 깡통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에게 자기표현 욕구는 진짜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좀 모호하게 퉁친다. 내가 날 오해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솔직히 나를 남에게 표현하는 게 좀 그렇다. ‘좀’과 ‘그렇다’를 세세하게 풀어보면 백 문장도 넘지만, 핵심은 독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애(愛)에 있다. 내가 뛰어난 문장가여서 읽자마자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글을 적어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주어 서술어도 따로 노는 나의 글솜씨로는 어림없다. 독자의 귀중한 시간은 낭비되어선 안되기에.

백번을 양보해서 칠십억 인구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글로 나를 표현하고 싶지 않을까? 욕구가 없는 것인지, 역지사지가 뛰어나 생긴 욕구를 억압하는 것인지. 어쨌든 결론은 글을 쓰려는 내 심리는 억압되었다. 이 억압심리는 역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나를 표현할 때 늘 부끄러움을 느꼈다. 칭찬이든 욕이든 간에 나를 드러낸다는 건… ‘좀….’ 이게 내 기본 심리다. 이건 아주 쉬운 산수다. 표현에 관한 반응이 긍정· 부정이 나올 확률이 반반이라고 할 때, 안 하는 게 이득이다. 표현을 안 하면 0이 되기 때문이다. 부정이 나올 걸 염려하는데 50%를 쓰느니 아이 칭찬도 그냥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남을 위한 게 아니에요. 자신을 위한 것이지”.

고전 연구가 고미숙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현명한 첨언을 본보기 삼아 내 억압심리를 헤아려 본다. 부정적 평가를 당하지 않으려고 글쓰기를 하기 싫다고 억압해온 내 마음.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고 난 뒤 그 콩고물(평가)에 대해서만 천착해 쓰기의 동기도 잃어버린 나. 다시 질문해보자.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글쓰기가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어? 대답은, 망설일 것도 없이 확신에 찬 예쓰!


초등학교 때 난 일기 쓰는 걸 매우 좋아했다. 나름 재밌게 보낸 하루를 나중에 기억하고 싶어서 일기로 기록했다. 나중에 보는 재미를 떠올리니, 그때는 미래의 나라는 독자가 혹평을 할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단지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 글을 쓰면서 그때 재미있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 기분이 좋아졌다. 또 그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나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이 들면 내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 새로움이 어색했고, 그 어색함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내 본성에는 쓰기에 대한 기쁨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평가가 시작되니 꼬리를 감추었지만. 타인의 인정이나 글의 효용은 잠시 떠나 ‘나는 쓰고 싶었구나’. 내 안의 에로스를 인정해본다. 자, 이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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