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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Apr 24. 2023

나는 솔로 14기: 나이로 여자 ‘후려치기’ 통했나?!

 

나는 솔로 14기 ‘골드미스&미스터’ 특집에 40대 여성/남성 출연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여성 출연자들의 평균나이가 40대가 웃돌자 같은 또래의 남성출연자들은 왜 내가 저런 (늙은) 여자랑...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이건 아니잖아.. 얼굴에 분노가 얼핏 서려있기도 하고, 절대 나이 든 여자는 안돼.. 굳게 결심을 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 여성 출연자들의 '늙음'을 용납하지 못하는 남성 출연자들의 모습은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고스란히 다시 재현된다. 조회수 4만 3천, 댓글수 130개를 육박한 '나는 솔로 역대급 대 참사'라는 제목의 커뮤니티 글은 40대 여성들의 출연을 '대참사'라고 명명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대참사大史'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며, 예문으로는 '쓰나미 때는 최종적으로 54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가 있다. '자연재해'나 '국가적 재난'처럼, 40대 여자가 연애와 결혼을 목적으로 나는 솔로에 출현한 게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이다.늙은 여자(40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명백히 드러난다.


동조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여자는 나이가 깡패', 그냥 덮어놓고 무조건 나이 많은 여자는 안돼! 를 외치거나, '웬 이모님들이 나오셨냐'며 조소가 섞인 비아냥까지  40대 여자에 대한 '싫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을 근거 삼아 보다 논리적인 이유로 40대 여성을 거부하고 20대 여성을 선호하는 댓글들도 있다.


'결혼은 애 낳으려고 하는 건데 노산이면 결혼은 왜 하나요?'


'.......... 20대 초반 어린 여자 찾는 건 생물학적 본능이죠. 출산에도 좋고 태아에도 좋고 임신에도 좋고. 단점 자체가 없어요'   


결혼은 재생산(출산)을 위한 것임으로 어린 여자를 찾는 것은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저절로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남성이 내가 개인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언사들은 어린 여성 선호와 나이 든 여성의 혐오를 정당화한다.


심지어 40대 (늙은) 여자들을 출연시킨 제작진을 '페미가 묻었다며' 비판하는 남성 회원들도 있다. '미디어에서 자꾸 늙은 여자 받아주는 상황을 보여주네요. 이런 방송이 자꾸 만들어지면 어린 여자를 추구하는 남자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혼기 지난 여자들을 받아줘야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게 되죠'.자신들은 어린 여자를 만나는 게 당연한데 (본인들이 생각하는) 결혼나이보다 늙은 여자들을 매칭 프로그램에 내보내다니 그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 알겠다. 남성 집단의 본능적인 취향이니 재생산을 위해 '싱싱한' 젊은 여자 만나세요'. 하고 쿨하게 넘겨 버리면 될까? 14기의 남성 출연자들의 40대 여성 출연자들을 향한 거부반응을 보고 나는 솔로의 30대 여성 MC는 나이 먹기 전에 결혼할 다짐을 한다.



늙으면 선택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여초 커뮤니티에는 이런 두려움을 담은 글들이 올라왔다. 그중 한 글은 '제가 시집갈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결혼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고 있다.


'밥 벌어먹고 살 정도고 학력은 좋은 내년 40살 마지막 30대 여자입니다.     

나솔에 40대 남녀가 나왔는데... 저런 사람들도 결혼하려고 나왔고 아직 못 갔는데

나는 갈 수 있을까? 싶어요'      

 

여성엠씨도 이 원글을 쓴 여성도 늙은 여자에 대한 혐오를 내면화해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늙어서 남자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것은 곧 혹은 나중에라도 자신의 늙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자기혐오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게 바로 나는 솔로 14기 방송의 '여성혐오(misogyny)'폐해를 적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제작진은  결혼 시장에서 (조건 좋은) 여자들이 유일하게 갖지 못한 나이로 이들을 후려치기 해 모자란 존재로 보이게 했다. 이것은 대놓고 이 시대의 결혼하지 못한(않은) 나이 든 여자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모자란여자, 즉 나이들이 전에 결혼해서 애를 낳는 여자가 정상적이다,라는 사회 규범을 재생산한다. 자기 밥 벌어먹고살고 이성관계를 떠나 행복한 여성의 삶은 인정받기 어렵다. 아무리 다 갖춘 여자라도 말이다.


“oo 이 정도면 외모도 반반 직업도 괜찮은데 어떻게 아직까지 결혼을 못했지?”

“oo 하느라 바빴다던데?”

“아무리 바빴어도 여자가 괜찮으면 남자들이 가만 안 둬”

“우리가 모르는 뭐 빠지는 데가 있나 보지..”

“내가 듣기로는....”


이따금 들려온 결혼하지 않은 (늙은) 여성에 대한 '험담'이다. 모자라지 않은 여자가 되기 위해 남자와 관계, 이성애 가족제도로 들어가야 한다. 이게 여성 억압이다. 이걸 피디가 대 놓고 남자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내면화 한 여성들은 '일찍 결혼해서 저런 소리 듣지 말아야지,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을 오직 나이로만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려고 한다.  


자기 보다 조건 이성에게 비난을 가해 자존감을 낮게 해 사귀는 걸 후려치기라고 한다. '예쁜 여성에게 네가 진짜 이쁜 줄 아냐? 너 정도 얼굴은 세고 셌다' 하며 그 여성을 평가절하한다. 즉, 비싸고 좋은 제품을 이상한 이유로 자꾸 흠집 잡아 싸게 사려는 음모다. 후려치기라는 건 개인적 차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TV에서 여성 후려치기가 일어나다니?! '예능을 그냥 웃자고 보는 건데 왜 죽자고 달려들어?, 예능이 다큐냐?'라고 혹자들은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양식에는 그 당대의 인간 삶의 규범이 드러난다. 마치 문학작품에 진실성이 묻어나는 것처럼.           


1960년대 미국 좌파들은 TV를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TV 방송에서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보다 더 용이하게 지배하기 위해 '이렇게 살아라' 하며 사회규범을 전파한다. TV를 보면 지배계급이 원하대로 생각하고 사는 '바보'가 되는 것이기에, 한동안 TV는 바보상자로 불리웠다. 이제 '나는 솔로' 방송이 (늙은) 여자를 후려쳐 여성 혐오를 (재)생산하고 전파하는 바보 물을 만들고 있다. 애석한 일이기에 급히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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