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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y 23. 2023

어딜 삼겹살이, 감히 등심이 흉내 낼 수 없는 맛

적당함의 극치, 양갈비

기름을 발라 잘 달구어진 화로 위에 두툼한 양갈비를 올린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어간다. 구수한 연기가 올라오고 고소한 기름 내가 진동을 한다.



딱 한번만 뒤집어 육즙이 살아있는 양고기를 맛본다. 눈, 코, 입, 맛의 삼위일체 중 가장 먼저는 눈이다. 겉은 맛있는 그릴 자국이 난 갈색, 속 안은 촉촉한 핑크빛. 완벽하다! 이제 코로 먹는다. 킁킁~ 누가 양고기에 누린내가 난다고 했는가?! 여봐라, 당장 곤장을 대령하라!! 이 양 기름의 고소한 냄새. 음... 이 정도면 아주 흡족하다.



냄새를 견딜 수 없었던 입이 빨리 집어넣으라며 죠동아리를 쭉 내밀어 아우성을 친다. 알았다. 간다 가~.  일단 혓바닥으로 기름을 핥아 고소함을 맛보고, 위 아랫이빨로 지그시 눌러 꿀꺽 육즙을 삼킨다. 이제 고기를 씹어 볼까? 아.... 적당히 부드럽다. 적당히 고소하다. 적당히 졸깃하다. 적당히 아삭아삭 씹힌다. 양갈비... 그 맛은 모든 면에서 적당한, 그 극치의 맛을 가졌다. 감히 삼겹살이, 어디 등심이 흉내 낼 수 있는 그런 맛이 아니다.  


양고기를 보니 칭기즈칸의 말발굽 소리가 떠오른다. 저 멀리서 흙먼지를 흩날리며 휘이이이이잉~~ 거칠게 말을 몰아 적진을 향해 내달리던 옛 몽골 전사들. 몽고는 가장 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세계 역사상 제일 큰 영토를 지배했던 제국이다. 당시 한나라의 군대는 병사 일만 명 당 취사병이 3천 명이나 되었었고, 하루에 한 번은 3-40명이 지고 다녀야 하는 큰 솥에 나무로 불을 때 밥을 해 먹었다. 반면, 몽고군들은 양고기를 말려 육포를 뜯으면서 전장을 달렸다고 하니, 밥 할 때 공격을 받았다면 한족 군대는 전멸당할 수밖에.


군인과 달리, 일반 몽골인도 육포를 먹었을까? 본디 유목민이었던 몽골 사람들은 초원과 사막에서 옮겨 다니면서 생활을 했다. 매우 덥고 건조한 기후를 견디는 동물은 양과 낙타 밖에 없었다. 낙타들은 이동수단으로 써야 했기에, 양고기가 그들에게는 단백질을 보충하는 가장 흔한 형태였다. 말린 고기들은 이동할 때 주로 먹고,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양을 잡아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었다. 아메리칸들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먹듯이, 이들도 명절 저녁에 구운 양고기를 먹는다.


일단 잡은 양의 살코기를 슬렁슬렁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커다란 난로 위에 화로를 올려 불에 달군 초토라는 돌 사이사이에 고기를 껴 구워 먹었다. 양념은 소금만 위에 살짝 뿌리는 형식으로 고기의 본연의 맛을 살리고자 했다. 살코기를 다 먹고 발라낸 뼈들은 다음날까지 난로 위에서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내 몽골식 사골국을 만들어 아침으로 먹었다. 우리가 설날에 사골 육수로 떡국을 끓여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몽골 사람이 설날에 먹는 양갈비를 상상하며 양갈비 집 문을 열었다. 대뜸 눈앞에 펼쳐진 건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잘 달 구워진 화로 위에 두툼한 양갈비가 올려지고 그 옆으로는 큼지막하게 썰은 대파와 각종 야채들이 놓여있었다. 실제로 이런 작은 화로 위에 야채와 양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일본의 홋카이도 사람들의 풍습이라고 한다. 오래된 것은 아니고, 최근 한세기도되지 않은 일이다. 2차 세계 당시 일본은 군모를 생산하기 위해 대규모로 양을 길렀으나, 패전한 이후 쓸모가 없어진 양들을 도축해 고기로 먹었다고 한다. 특히 원자폭탄 투하로 완전 나라가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나라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양고기는 각광받는 고마운 음식이었다고 한다.


내가 기대했던 몽골식은 아니지만, 홋카이도 식으로 먼저 구운 야채들을 한입 베어 먹었다. 고기 먹기 전 애피타이저로 그만이었다. 특히 구운 토마토는 입맛을 자극해 식욕을 돌게 하는 데는 그만이었다. 이제 고기의 윗부분이 회색이 될락 말락 할 때 한 번만 딱 뒤집어 다 익은 뒤에는 가위로 먹기 좋게 잘랐다. 본디 고기 중에 가장 맛있는 살코기는 뼈에 붙은 살이 아니던가?



잘 아는 그 삼겹살의 고소한 기름 맛도, 한우의 살살 녹는 식감도 아니었다. 말로 표현하기 매우 어렵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적당한’ 맛이다.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고소하며, 적당히 졸깃한 그리고 적당히 아삭아삭 씹히는, 그 맛은 모든 면에서 적당한, 적당함의 극치의 맛이었다.


——

사 먹은 곳: 징기스 대봉점, 징기스칸 세트; 사진 출처: 사진 1 징기스 거제점 @baghyerim, 2,3 징기스 대봉점 @genghis. dae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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