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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홍섭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뿔이 있다.

이 뿔이라는 것도 결국 신체의 일부인지라 나이를 먹을수록 그 모습을 달리하곤 한다.


어린아이의 뿔은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다. 조막만 한 머리통 위에 시도 때도 없이 솟아 있다.

식탁 위에 고기반찬이 없을 때도 솟아오르고,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할 때도 솟아오른다.

심지어 자신도 왜 솟는지 모르겠을 때에도 뿔은 솟아오른다.

하지만 솟아올라봤자 귀엽고 말랑한 아이의 뿔인지라 그 누구도 경계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의 뿔이 귀엽다며 부러 뿔을 꺼내보려고 짓궂게 굴곤 한다.


청소년의 뿔은 시시각각 그 모습이 변한다. 모습뿐만 아니라 솟아오르는 시점도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낮에는 코뿔소처럼 콧등에 불쑥 자랐다가도 저녁에는 기린처럼 머리 위에 두 개가 자라기도 한다.

당최 알 수가 없으니 가까이 있다간 갑작스레 솟아오른 뿔에 찔려 다치기 십상이다.

게다가 누구의 뿔이 더 날카롭고 단단한지, 누가 더 뿔을 쉽게 꺼내고 거칠게 휘두를 수 있는지, 누구의 뿔이 더 특이하게 생겼는지가 무리생활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틈만 나면 뿔을 꺼내 주변인들을 다치게 하곤 한다.


성인이 되면서 뿔은 대체로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본인의 뿔이 크거나 단단하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경계의 대상이 되어 배척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는 뿔의 생김새나 모양이 남들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면 좀처럼 무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성인의 뿔은 대체로 다른 이를 무의식 중에 해치지 않도록 정수리 위에 위치하며 그 모습 또한 여러 방법으로 가리고 다닌다.


나는 뿔이 특히나 무섭다.

남이 가진 뿔뿐만 아니라, 내 정수리에 있는 뿔도 무섭다.

내가 뿔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그 순간, 다른 사람의 뿔이 나를 겨냥할 것만 같아서 주춤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잠들기 전 고운 사포로 아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뿔을 갈아낸다.

낮 사이에 내 뿔이 남들에게 보였던가? 안 보였던가? 옆으로 넘긴 머리카락 사이에 조금 비쳤던가? 술 한잔 기울일 때 그 사람의 뿔이 보였던가? 날카로웠던가? 따위를 생각하며 뿔을 갈아내는 것이다.

보통의 날들은 이런 노력으로 남의 뿔도 내 뿔도 드러내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마친다.


근데 이 뿔이란 게 참으로 성가신 녀석 인 게 그렇게나 매일 밤 갈아내어도 쉽사리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이쪽 머리카락에 차마 숨기지 못한 녀석을 갈아내면, 내일은 다른 쪽 머리카락 사이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래도 내 뿔만은 내가 갈아낼 수 있으니 매일매일 갈아내고 잠이 든다.


그렇게 내 뿔을 갈아내기만 한다고, 평화로운 날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뿔 감기라도 유행하는 시기가 오면 갈아내고 가리는 데 익숙한 성인들의 뿔도 마치 청소년의 뿔처럼 날카롭고 단단하게 머리 위에 우뚝 솟아버린다.


그럼 나 같은 겁쟁이는 무서운 뿔 감기를 피해 집으로 도망친다.

그리곤 곧장 문을 걸어 잠그곤 손거울로 구석구석 비추며 밤새도록 울며 뿔을 갈아 낸다.


이런 내가 싫어 ‘뿔을 가리는 100가지 방법’, ‘멋있게 뿔을 드러내는 방법’ 등의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나도 이제 더 이상 뿔이 무섭지 않다고 느끼게 되지만 희한하게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뿔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도 뿔을 갈아낸다. 더 잘 보이지 않게 더 완만해 보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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