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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땅

by 이홍섭

주니어 개발자로 지내던 시절, 역량 향상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를 만나곤 했다.

그 때마다 내 마음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성장할 기반인 내 프로젝트가 가치 없는 땅 한 필인 것만 같아서.

매일 죽어라 괭이질을 하고 돌고르기를 해봐도 의미 없는 짓인 것 같아서.

내 땅엔 잡초만 자라날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의 비옥한 땅에서 하루가 다르게 곡식을 키워나가는데 내 땅은 늘 헛곡괭이질을 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했었다.


불만은 불안을 만나 바람을 만난 산불처럼 손쓸새 없이 주변으로 퍼졌고, 내 땅을 다 태우고도 풀 한포기 자라날 수 없는 잿더미만 남겼더랬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잿더미 땅을 더듬어 찾아간다.

잿더미 땅을 보면 괭이질을 하고 잡초를 뽑던 지난날의 내가 있다.


그 때는 마음 아프게 타버렸던 잿더미땅이 이제는 좋은 비료가 되어 내 땅을 더 비옥하게 만든다.

그 때는 초조하고 서러웠던 괭이질과 잡초뽑기가 이제는 내 곡식을 어떤 곡식 보다도 잘 익을 수 있게 한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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