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도 화나고, 직원도 지쳤을 때
아웃소싱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고객사랑 직원이랑 사이에서 어떻게 해요?"
솔직히, 못 할 때가 더 많다. 양쪽 다 맞는 말을 하고, 양쪽 다 화가 나 있고, 양쪽 다 나한테 "당신이 해결해라"고 한다. 갑과 을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하루는, 두 개의 전화기를 번갈아 드는 것과 같다. 한쪽을 내려놓으면 다른 쪽이 울린다.
얼마 전, 서울 여의도의 한 대형 백화점 뷰티 브랜드 매장에서 일이 생겼다. 우리 직원 5명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부매니저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실장님, 저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이유를 들어보니 이랬다. 고객사 담당자가 수시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고객 동향 보고해라, 재고 수량 확인해라, 각종 수치를 정리해서 올려라, 장사가 왜 안 되냐, 왜 잘 되냐. 전화가 안 오면 카톡이 왔다. 매장에서 고객 응대하고 물품 정리하기도 바쁜데, 그 틈틈이 보고 자료까지 만들어야 하니 직원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부매니저는 그동안 웬만해서는 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고객사 담당자가 매장에 직접 와서 면담을 했다. 매출이 안 나오는 이유를 이야기하다가 부매니저가 한마디 했다. "장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취합 요청은 좀 줄여주시면 안 될까요."
그 순간 고객사 담당자가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매장 안에서.
나는 부매니저를 달랬다. 일단 감정을 가라앉히고, 내가 고객사 쪽에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고객사 담당자의 상급자에게 연락을 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야 판단이 서니까.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반대쪽 이야기가 쏟아졌다.
"아, 그 매장이요? 거기 직원들 고객 응대도 안 되고 있는 거 알고 계셨어요? 관리자가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거 알고 있었습니까? 매출 수치도 정확히 모르고, 매장 청결 상태도 엉망이고. 우리가 최소한의 관리를 위해 요청하는 건데 이것도 힘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우리가 돈을 왜 줘야 합니까?"
1시간을 들었다.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가 나왔다. "그리고 어제 면담에서요, 당신네 직원이 우리 담당자한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부매니저한테 들은 이야기와 고객사에서 들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부매니저는 "고객사 담당자가 소리를 질렀다"고 했고, 고객사는 "니네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20년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양쪽 다 자기 입장에서는 맞는 말을 하고 있다. 고객사 담당자는 돈을 주고 맡긴 매장이 기대만큼 안 돌아가니 답답했을 거고, 우리 직원은 매장에서 일하면서 수시로 들어오는 요구에 지쳐 있었던 거다. 둘 다 틀린 게 아니라, 둘 사이를 조율하는 사람이 제 역할을 못 한 거다.
그 사람이 나였다.
며칠 정도 시간이 지나고, 고객사 담당 직원을 직접 만나러 갔다. 전화로는 안 되는 일이다.
먼저 사과했다. 현장 관리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고, 직원이 담당자에게 큰소리를 낸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잘못이라고. 그 부분은 명확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제안했다. "요청 사항을 정리하는 창구를 하나로 만들겠습니다. 매장 직원한테 수시로 연락하는 대신, 저희 운영 담당자한테 주시면 취합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매장 직원들은 고객 응대에 집중하게 해주시고, 보고는 저희가 체계적으로 올리겠습니다."
담당 직원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 담당자도 좀 과했을 수 있어요. 근데 매장 상태가 워낙 안 좋았으니까."
"네, 매장 상태는 저희가 바로 잡겠습니다. 다만 현장이 안정돼야 매출도 나옵니다. 직원들이 보고 자료 만드느라 고객을 못 보고 있으면 매출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상대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사에서 나와서, 부매니저를 만났다.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했다.
"고객사 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쪽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매출 파악도 정확하지 않았고, 매장 청결도 지적을 받았더라고요. 그리고 면담에서 큰소리 낸 건, 이유가 어찌 됐든 우리가 먼저 잘못한 거예요."
부매니저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실장님, 저희가 얼마나 참았는데요."
"알아요. 충분히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참다가 터지면 결국 우리만 손해예요. 앞으로 보고 창구는 제가 정리할 테니까, 매장에서는 고객 응대에만 집중해요. 그리고 힘들면 터지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해요."
부매니저가 한참 만에 말했다. "실장님도 힘드시잖아요. 양쪽 다 들으시면서."
맞다. 힘들다. 그런데 이게 내 자리다.
한 주가 지나고, 보고 체계가 잡히면서 고객사 담당자의 수시 연락이 줄었다. 매장 직원들은 고객 응대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고, 주간 보고서 하나로 고객사가 필요한 수치를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매출이 바로 오른 건 아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객사 담당자가 매장에 왔을 때, 예전처럼 따지는 톤이 아니라 "이번 주 어땠어요?" 하고 묻는 톤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매니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실장님, 요즘 담당자분이 좀 달라지셨어요. 저도 좀 편해졌어요."
갑과 을.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무겁다. 돈을 주는 쪽이 갑이고, 받는 쪽이 을이라는 구도. 아웃소싱 업계에서는 이 구도가 매일의 현실이다.
그런데 나는 이걸 좀 다르게 보려 한다. 고객사는 매장이 잘 돌아가길 원하고, 직원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원하는 건 결국 같다. 다만 그 사이에서 소통이 막히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으면서도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그 막힌 소통을 뚫는 게 내 일이다. 고객사한테는 "현장을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직원한테는 "혼자 감당하지 마라"고 말해주는 것. 양쪽 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양쪽이 만나는 지점을 찾게 된다.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양쪽한테 동시에 욕을 먹는다. 그래도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있다. 내가 없으면 이 둘은 영영 대화하지 못한 채 등을 돌리고, 결국 매장은 망가지고 사람은 떠나니까.
갑과 을 사이에 서 있는 건 외롭다.
그런데 그 외로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있어야, 양쪽 다 무너지지 않는다. 그게 이 일의 무게이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