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가장 솔직했던 사람이 가장 성실했다
면접에서 "왜 지원하셨어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답이 돌아온다. "관심 있는 분야라서요." "경험을 쌓고 싶어서요." "이 브랜드를 좋아해서요." 듣기 좋은 말들이다. 그런데 20년 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면접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지원 동기가 그럴듯한 사람이 반드시 일을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예상을 깨는 한마디를 던진 사람들이다.
작년, 서울 북촌 쪽에 있는 대형 리빙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때였다. 2주짜리 행사였는데, 규모가 꽤 컸다. 스태프가 많이 필요했고, 채용사이트에 공고를 올려 지원자를 받았다.
보통 이런 팝업스토어에는 여성 스태프를 많이 뽑는다. 그런데 지원자 중에 스물네 살 남자 친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이력서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나이가 어리고, 남자가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궁금했다. 원래 내가 직접 면접을 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 이야기도 좀 듣고 싶어서 행사 전날 잠깐 이동해서 만나게 되었다.
시간 맞춰서 왔다. 인상은 나쁘지 않았는데, 표정이 좀 무뚝뚝했다. 이름은 재혁이(가명).
간단하게 몇 가지 물어보다가 물었다. "혹시 이 일에 지원하게 된 이유가 뭐예요?"
재혁이가 1초도 안 고민하고 답했다.
"그냥 돈 때문에요."
솔직히, 순간 좀 당황했다. 이게 쿨한 건지, 내가 꼰대인 건지. 뭔가 한마디 더 붙여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었다.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배우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돈.
일단 다음 날부터 바로 행사라 인원이 급했다.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합니다" 하고 마무리했는데, 재혁이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휙 나갔다.
솔직히,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친구는 내일 늦거나, 안 나오겠구나.
다음 날 아침,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재혁이였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행사장 바닥을 쓸고, 테이블을 닦고,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다. 첫날이니까 긴장해서 일찍 왔겠지.
1주일쯤 지나서 현장에 다시 갔다. 재혁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창고에서 상품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무거운 걸 옮기고, 정리하고, 다시 나가서 매장 쪽 물건을 세팅하고. 쉬지 않고 움직이더라. 음료수 하나 사서 건넸다. "수고한다." 재혁이는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는 바로 다시 일하러 갔다. 역시 무뚝뚝했다.
행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현장 매니저한테 업무 보고를 받았다. 이번 행사 전체적으로 순조로웠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매니저가 한마디 했다.
"실장님, 재혁이가 숨은 공신이에요. 그 친구 없었으면 다른 스태프들 진짜 고생했을 거예요. 무거운 거 다 혼자 들고, 세팅도 먼저 하고, 정리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하고. 좋은 친구 뽑아주셔서 고마워요."
면접에서 "돈 때문에요"라고 했던 그 친구가, 현장에서는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겸사겸사 재혁이한테 전화를 했다. 수고했다는 인사도 할 겸,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친구 사정이 간단하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낮에는 이런 행사 스태프 일을 하고, 밤에는 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주말에는 배달 일도 했다. 잠잘 시간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을 정도였다. 진짜 돈이 필요했던 거다. 면접에서 "그냥 돈 때문에요"라고 한 건, 무례한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었다.
내가 사람을 또 오해했구나.
면접이라는 건 결국 서로를 판단하는 자리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 그런데 거기서 보는 건 대부분 말이다. 얼마나 그럴듯하게 대답하는지, 얼마나 준비된 것처럼 보이는지. 나도 그 틀에 갇혀 있었다.
"돈 때문에요"라는 답을 듣고, 나는 이 친구를 성의 없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가니까, 내일 안 나올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20년 경력의 관리자라는 사람이, 한마디 듣고 사람을 판단한 거다.
재혁이는 말을 꾸미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1시간 일찍 출근하고, 무거운 짐을 먼저 들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정리하는 것. 면접에서는 한 줄짜리 답변이었지만, 매장에서는 누구보다 긴 문장을 쓴 셈이다.
그 뒤로, 나는 면접에서 한 가지를 바꿨다. "왜 지원하셨어요?"라는 질문에 그럴듯한 답이 돌아오면 한 번 더 묻는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그러면 가끔, "사실 돈 때문이요"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 답이 더 믿음이 간다.
돈이 필요해서 일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일의 이유가 뭐든, 현장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답이다. 이력서에 쓴 글이 아니라, 매장에서 흘린 땀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재혁이한테 한 번 더 제안한 행사가 끝나고 다음 일정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재혁이가 그때 처음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네, 실장님. 돈 되는 거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 웃음이, 면접 때 "돈 때문에요"라고 했던 그 무뚝뚝한 얼굴보다 훨씬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