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도 열을 안고 "어서 오세요"를 말하는 사람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될까. 사무실이면 재택근무라도 하겠지만, 매장은 그게 안 된다. 오늘 내가 안 서면 매장은 비고, 고객은 돌아가고, 배송은 밀린다. 그래서 아픈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어서 오세요"를 잠긴 목소리로 말하면서.
이건 성실함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서울의 한 백화점 가전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은정 님(가명). 30대 후반 여성 매니저다. 중소 가전 브랜드 매장을 맡고 있었는데, 일을 참 잘하는 분이었다. 고객 상담부터 재고 관리, 배송 확인, 매장 정리까지. 가전은 제품 스펙이 복잡해서 공부할 양도 많은데, 그 매니저는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해도 바로 답이 나왔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고객사가 운영비를 워낙 타이트하게 잡아서, 매장 면적 대비 인원이 적었다. 은정 매니저는 매번 내가 갈 때마다 대화도 못 할 만큼 바빴다. 고객 상담하다가 전화 받고, 전화 끊자마자 배송 확인하고, 그 사이에 매장 청소까지. 내가 옆에 서 있으면 오히려 민망해질 정도였다.
입사 이후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이 없는 분이었다.
어느 봄날 오전, 카톡이 왔다. 은정 매니저였다.
온도계 사진 한 장과 짧은 메시지.
"실장님, 오늘 열이 나서 출근이 어려울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온도계를 보니 39도가 넘었다. 놀라서 바로 답장했다. "병원 먼저 가세요. 대체 인력 제가 알아볼게요." 그리고 바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투입 가능한 인력을 찾으면서, 안 되면 내가 직접 매장에 가려고 이동 준비까지 했다.
30분쯤 지나서 카톡이 또 왔다.
"실장님, 오늘 배송 확인할 건이 많아서 아무래도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나는 바로 답장했다. "그러지 마세요. 대체 인력 보낼게요."
답이 없었다.
오픈 시간이 되자, 근무 관리 시스템에 은정 매니저 이름이 '출근'으로 떴다.
아침 러시가 지나고 나서 전화를 했다. 은정 매니저 목소리는 확실히 아픈 사람 목소리였다.
"매니저님, 왜 나오셨어요."
"실장님, 저도 시니어 스태프한테 부탁해봤는데 오늘따라 일정이 안 맞더라고요. 주변 매장 매니저한테도 물어봤는데 다들 빠듯하대요. 그리고 오늘 배송 고객분들 생각하면 제가 안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약국에서 해열제 사 먹었더니 열은 좀 내렸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대체 인력 보낼 테니까 바로 들어가세요."
"실장님,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사람이 괜찮다고 하는 것. 매장에서 이 말은 참 자주 들린다.
매장 순회 일정 중이었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순회 동선을 바꿔서 은정 매니저가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지하 식당가에서 죽을 하나 사서, 가전 매장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작은 어깨의 매니저가 상담 테이블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 고객이 없는 틈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있던 거다. 가까이 가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매니저님, 에효…"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죽을 건네면서 말했다.
"일단 백화점 휴게실 가서 이거 드시고 좀 쉬세요. 2시간 안에 돌아오면 크게 혼낼 겁니다."
은정 매니저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죽을 받아 들고 나갔다. 휴게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 내가 다 미안해졌다.
이 사람이 39도 열을 안고 출근한 건, 성실해서가 아니다. 자기가 안 나오면 매장이 비니까. 배송 고객이 기다리니까. 대체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게 이 사람을 아파도 일어나게 만든 거다.
매니저를 휴게실로 보내고, 담당 관리자에게 전화했다.
"너 이거 알고 있었어?"
"아니요, 몰랐습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주의를 줬다. 매장 인원이 아프면 가장 먼저 관리자가 알아야 하고, 대체 인력을 찾는 건 관리자의 일이지 현장 매니저의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지시했다. 은정 매니저 휴게 끝나면 무조건 퇴근시켜라. 내일 모레 이틀은 다른 인력으로 스케줄 변경해서 네가 직접 챙겨라.
그 일 이후, 며칠이 지났다. 은정 매니저는 이틀 쉬고 매장에 복귀했다.
다른 백화점 패션 매장에서 매니저 면담을 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매니저가 감기에 걸려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목소리가 잠긴 채로 고객에게 "어서 오세요"를 하고 있었다. 면담 중에도 기침을 참느라 어깨가 들썩였다.
"매니저님, 오늘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감기 좀 걸리긴 했는데 뭐, 하루 이틀 지나면 낫겠죠."
또 괜찮다는 말이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할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은정 매니저였다.
"실장님, 그때 죽 너무 잘 먹었어요. 걱정해주셔서 금방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스크 쓴 매니저 앞에서 그 메시지를 읽는데, 두 장면이 겹쳤다. 열이 39도인데 출근한 은정 매니저와 지금 내 앞에서 기침을 참고 있는 이 매니저. 다른 매장, 다른 사람인데 같은 풍경이었다.
은정 매니저한테 답장을 보냈다.
"매니저님, 다음에는 죽 말고 '오늘 쉬세요' 한마디를 먼저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답장이 왔다. "실장님, 그 죽이 약보다 효과 좋았어요 ㅎㅎ 근데 정말 그날 제가 출근 안 했어도 된다는 걸 알았으면, 솔직히 안 나갔을 거예요. 쉬어도 된다는 말을 아무도 안 해줬던 거죠."
쉬어도 된다는 말을 아무도 안 해줬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 뭘까. 매출을 올리는 것, 매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 고객사 보고를 잘 하는 것. 다 맞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픈 사람한테 "오늘 쉬어도 돼요"라고 말해주는 것.
죽 한 그릇은 따뜻했지만, 그건 이미 39도 열을 안고 출근한 뒤였다. 내가 진짜 해야 했던 건, 그 사람이 집을 나서기 전에 "나오지 마세요, 제가 채울게요"라고 먼저 말하는 거였다.
매장 위에서 "어서 오세요"를 말하는 사람이, "오늘은 쉬어도 돼요"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관리자인 내가 아직 다 못한 일이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