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한참 남더라고요"
칭찬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관리자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오래 해보니 알게 됐다. 칭찬을 하느냐 안 하느냐보다, 언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진우 씨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진우 씨(가명)는 스물여덟이었다. 서울 북촌의 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오픈할 때 단기 스태프로 들어왔다. 2주짜리 행사였다.
이력서에는 별게 없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카페, 편의점, 물류센터 단기 알바를 전전했다고 적혀 있었다. 정식 취업은 한 번도 없었다. 면접 자리에서 제가 물었다.
"왜 정식 취업은 안 해보셨어요?"
진우 씨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들어갈 기회가 잘 안 와서요."
말수가 적고, 눈을 잘 못 마주쳤다. 판매직에 적합한 인상은 아니었다. 다만 인원이 급해서 일단 데리고 가기로 했다.
오픈 첫 주, 매장에 들렀다. 진우 씨는 한쪽 구석에서 상품 정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스태프들이 고객을 응대하는 동안, 진우 씨는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일은 꼼꼼했다. 정리한 자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매니저한테 인사하러 카운터 쪽으로 가다가, 카운터 옆 작은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 진우 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펼쳐봤다.
매장에 진열된 라이프스타일 제품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소재, 사이즈, 가격, 관리 방법, 세척 시 주의 사항까지. 손글씨였다.
매니저한테 물었다. "이거 진우 씨가 정리한 거예요?"
"네. 어제 마감하고 한 시간 넘게 남아서 정리하더라고요. 손님이 물어볼 때 답을 못 하면 안 된다고요."
매장 안쪽으로 가서 진우 씨를 불렀다. 노트를 들고 있었다.
"진우 씨, 이 노트 봤어요. 이거 다 직접 정리하신 거죠?"
진우 씨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제가 외우는 게 느려서요."
"느린 게 아니라, 꼼꼼한 거예요. 이 정도로 정리하는 사람 처음 봐요.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진우 씨가 잠깐 멈칫하더니, 작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게 다였다. 더 긴 대화는 없었다. 나는 매니저랑 다음 일정 이야기를 하다가 매장을 나왔다. 솔직히, 그 순간 내가 한 말을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2주 행사가 끝날 즈음, 매니저한테 연락이 왔다. "실장님, 진우 씨 좀 더 쓸 수 있을까요?"
이유를 들어보니 진우 씨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고객 앞에서 말도 못 꺼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제품 설명을 누구보다 자세히 하더라는 거다. 노트에 정리한 내용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으니, 어떤 질문에도 막히지 않았다. 거기에 진우 씨 특유의 차분한 말투가 더해지니, 오히려 고객들이 진우 씨를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단기로 끝날 줄 알았던 진우 씨가 정식 스태프로 전환됐다. 6개월 뒤에는 시니어 스태프가 됐고, 1년 뒤에는 후배 교육까지 맡았다. 지금은 다른 매장에서 정직원으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작년 말, 매장 순회를 돌다가 진우 씨가 있는 매장에 들렀다. 우연이었다. 진우 씨가 카운터에 있다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실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근황을 잠깐 묻고, 매장 한 바퀴 돌고 나오려는데 진우 씨가 따라 나왔다.
"실장님, 그때 그 노트 기억하세요?"
"노트요?"
"제가 처음 일할 때 만들었던 거요. 실장님이 그때 보시고 칭찬해주셨거든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런데 진우 씨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실장님이 '꼼꼼한 거예요'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한참 남더라고요. 저는 어디서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느린 거, 답답한 거, 그런 말은 들어봤는데."
진우 씨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노트를 더 열심히 썼어요. 누가 봐주든 말든, 그냥 쓰는 게 좋더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날 내가 한 말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노트를 보고 놀라서, 본 걸 그대로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진우 씨는 그 한마디를 몇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진우 씨가 잘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노트는 내가 본 거지, 내가 쓴 게 아니잖아요."
진우 씨가 웃었다. "그래도 봐주신 게 처음이었어요."
봐주신 게 처음이었다. 그 말이 오히려 내 마음에 한참 남았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을 누군가가 봐주기를 기다린다. 큰 칭찬이 아니어도 된다. "이거 네가 했어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한마디도 잘 안 한다. 보고도 그냥 지나가고, 봤어도 말하지 않고, 말하려다 다음에 하자고 미룬다.
진우 씨가 그날 노트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나는 칭찬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건 맞다. 그런데 진우 씨가 노트를 정리했어도, 내가 그 노트를 못 봤거나 봤어도 그냥 지나갔다면 어땠을까. 진우 씨는 정식 스태프가 됐을까. 시니어가 됐을까. 지금 그 매장에 서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칭찬할 거리가 보이면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일 해도 되는 칭찬이라면 오늘 하는 게 낫다는 것.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매장에 서 있는지 우리는 모르니까.
진우 씨와 헤어지면서 한마디 더 했다.
"진우 씨, 그 노트 아직 가지고 있어요?"
"네, 아직 있어요. 가끔 펴봐요."
"잘 보관하세요. 그게 진우 씨 시작이잖아요."
진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면접에서 봤던 작은 목소리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달라진 사람도 아니었다. 여전히 말수는 적었고, 여전히 차분했다. 다만 자기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칭찬 한마디로 사람이 바뀐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건 너무 큰 말이다. 다만 칭찬 한마디가 사람을 한 번 더 일어서게 할 수는 있다. 그 한 번의 일어섬이 모이면, 어느 날 그 사람은 자기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내가 본 진우 씨가 그랬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