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일을 자기 것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 하는 말이 있다. "이거 제가 했어요." 매장이 깔끔하다고 칭찬해도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라고 하고, 매출이 올랐다고 해도 "고객들 덕분이에요"라고 한다. 겸손한 거다. 그런데 가끔 그게 아쉬웠다. 자기가 한 일을 자기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아야, 그 다음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수아 이야기를 하려 한다.
수아(가명)는 스물네 살이다. 대학 4학년 방학 때, 처음으로 단기 스태프 일을 해본다며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 한 가전 양판점에서 마사지 기기 신제품 출시 팝업스토어가 열리는데 인원이 많이 필요했고, 워낙 쾌활한 성격이라 현장 매니저가 바로 채용했다.
첫 주 매장에 들렀을 때 수아를 처음 봤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다른 스태프들이 조용히 서 있는 동안, 수아는 지나가는 고객한테 먼저 다가가서 "한번 체험해보세요!" 하면서 웃고 있었다. 활기찬 친구였다.
다만 일이 손에 익지 않은 게 보였다. 마사지 기기는 종류가 많고 작동법이 제각각이라, 단기로 들어와서 며칠 만에 다 익히긴 어려운 제품이었다.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서 매니저한테 짧게 인사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며칠 뒤 매니저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수아 어제 안마건 작동을 잘못해서 고객이 '아!'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본인이 더 놀라서 한참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답장에 그냥 "괜찮아요, 처음엔 그럴 수 있죠"라고만 보냈다. 그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메시지가 왔다. 수아가 매장 뒤에서 한참 울었다고 했다. 매출이 안 나오는 날에 어떤 고객이 "이런 것도 모르고 무슨 판매를 해요"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는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하다가 뒤로 가서 울상이었다고 했다.
매니저한테 답장을 보냈다. "한번 잘 다독여주세요. 첫 주는 누구나 그래요." 그게 다였다. 솔직히 그 시기에 챙길 일이 너무 많아서, 한 명의 단기 스태프 사정에 더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매니저한테 메시지가 왔다. 톤이 평소와 달랐다.
"실장님, 수아 매출이 갑자기 올라가고 있어요."
이유를 물었다. 매니저가 설명하기를, 수아가 며칠 전부터 매장에 있는 모든 제품을 본인이 직접 써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안마건도 어깨에 대보고, 발 마사지기도 발에 끼워보고, 안마의자에도 앉아보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근하면 한 시간쯤 그렇게 본인이 체험해보고, 그 뒤로 응대 방식이 바뀌었다는 거다.
매뉴얼을 외워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써본 느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거 어깨 뭉친 데 진짜 좋아요. 제가 어제 써봤거든요." "발 부으신 분들은 이게 딱이에요." 고객들이 그 말을 더 잘 들었다. 본인이 써본 사람의 말이라는 게 전해지니까.
매니저가 마지막에 한마디 보탰다. "처음에 그 친구가 맞나 싶어요."
잠깐 생각했다. 그래, 사람은 한 번 무너지고 나면 다시 일어서는 방식이 다 다르다. 누구는 그대로 떠나고, 누구는 자기 방식을 찾는다. 수아는 후자였던 거다.
행사 마지막 주, 매니저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간 흥분한 목소리였다.
"실장님, 수아가 오늘 50패키지 팔았어요."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몇 개요?"
"50개요. 50패키지. 일주일 판매분이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그날 오후, 매니저가 다른 매장 일정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칠십대 정도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매장에 들어왔고, 마사지 기기 코너 앞에서 한참을 둘러봤다고 했다. 수아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매니저가 매장에 돌아왔을 때도 수아는 여전히 그 노부부 옆에 있었다. 안마건을 직접 어머니 어깨에 대드리면서 시연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어머, 시원하네" 하니까 수아가 "어머니 어깨 많이 뭉치셨네요. 매일 한 번씩 해주시면 좋아요"라고 친손녀처럼 챙기고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는 멀찍이 서서 그냥 지켜봤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 다른 스태프들은 한참 보다가 슬쩍 빠지는데, 수아는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다.
30분쯤 더 지났을 때, 노부부 중 어머니가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수아한테 뭔가를 적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노부부는 해외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잠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가족과 친척들한테 선물을 돌리려고 적당한 걸 찾고 있었는데, 수아가 한 시간 넘게 친손녀처럼 챙겨주니까 그 자리에서 결심한 거였다.
50패키지. 매니저가 옆에서 들으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매니저가 웃으면서 말했다. "수아씨 매니저 시켜도 되겠어요."
행사 마지막 날, 매장에 들렀다. 작은 상품권 한 장을 준비해서 갔다. 회사 차원에서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수아한테 상품권을 건네면서 말했다.
"수아 씨, 정말 수고 많았어요. 작은 거지만 받아주세요."
수아가 상품권을 받으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실장님, 저 때문에 매출 올랐어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풉, 하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잘 안 한다. 칭찬을 받아도 "다 같이 했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수아는 솔직했다. 자기가 한 일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줄 알았다.
농담으로 받아칠 수도 있었지만 고마운 마음에 수아한테 정중하게 인사했다. "수아 씨, 회사를 대표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아 씨 덕분에 우리가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 말을 하자 수아 표정이 바뀌었다. 웃고 있던 얼굴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눈이 글썽글썽해졌다.
"실장님… 저, 사회 나와서 이렇게 칭찬받을 줄 몰랐어요."
수아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사실 저, 가고 싶은 중견기업 입사 준비하고 있거든요. 자소서 쓰고 면접 준비하는데, 잘 안 풀려요.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다가 방학이라 용돈이라도 벌자 싶어서 시작한 거였어요. 처음엔 진짜 못했어요. 제품도 모르고, 작동도 잘못하고, 혼나기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나 진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도 했어요."
수아가 상품권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근데 오늘 실장님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어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좀 생길 것 같아요."
매장에서 나오는 길에 한참 생각했다.
내가 한 건 별게 없었다. 상품권 한 장 들고 가서 수고했다는 인사 한마디. 그게 다였다. 그런데 수아한테는 그 인사가 한 학기, 어쩌면 그 이상의 자신감을 만들어준 거였다. 솔직히 좀 미안했다. 고작 그 정도로 사람이 그렇게 변하는 거라면, 우리는 더 자주 했어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났다. 그 친구가 처음 일하고 무너진 뒤에 다시 일어선 방식 말이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었다. 매뉴얼을 외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본인이 제품을 직접 써봤다. 그리고 자기가 느낀 걸 그대로 고객한테 말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게 50패키지라는 판매를 만든 거다.
20년 이 일을 하면서 별의별 판매 교육을 다 받아봤다. 응대 매뉴얼, 클로징 기법, 고객 심리 분석. 그런데 수아가 한 건 그 어디에도 안 나오는 방법이었다. 그냥 진심이었다. 본인이 좋다고 느낀 걸, 좋다고 말한 것뿐이다.
스물네 살짜리 단기 스태프한테 배웠다. 이 일을 20년 한 사람이.
며칠 뒤 가전 양판점 본사 담당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번 팝업스토어 근무한 친구들 칭찬을 한참 했다. 특히 그 노부부 50패키지 친구 이야기는 현장에서도 한참 화제였다고. 고객사 쪽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뉴비즈원 칭찬에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수아한테 다음 행사 일정이 있을 때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다만 한마디 덧붙였다.
"실장님, 저 입사지원 기업 합격하면 그땐 못 와요. 근데 떨어지면 또 부르세요."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답했다. "수아 씨, 합격하면 합격해서 좋고, 떨어지면 우리가 좋고. 어느 쪽이든 잘 됐으면 좋겠네요."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매뉴얼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순간이다. 그 한 번이 있으면 사람은 다음 걸음을 뗀다.
수아가 그날 한 말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저 때문에 매출 올랐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말이 다르게 들린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자기를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을 들은 게 나였다는 게, 어쩐지 고마웠다.
나이가 어리다고 배울 게 없는 게 아니다. 오래 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스물네 살짜리 단기 스태프한테 진심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운 날이었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