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 일을 20년 했다. 그동안 만난 사람이 수천 명이다. 그중에 잊히지 않는 사람이 몇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입사 초창기 만난 선배다.
이름을 박 차장님이라고 하자. 지금은 회사를 떠나셨고, 연락도 끊긴 지 오래됐다. 그런데 가끔 일하다가 막힐 때면 박 차장님 목소리가 들린다. "야,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 그 목소리가 지금까지 나를 끌고 왔다.
2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스물다섯에 이 업계에 들어왔다. 매장 인력 아웃소싱이라는 일이 뭔지도 잘 모르고 시작했다. 그 시절은 지금이랑 많이 달랐다. 채용 사이트도 초기 도입시기였고, 채용 앱도 없었다. 사람을 구하려면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매장 인력이 급하게 필요하면, 후보자 명단을 펼쳐놓고 한 명씩 전화했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 마트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거절당하면 다음 사람. 또 거절당하면 또 다음 사람. 새벽 1시까지 전화 돌리는 날이 흔했다.
대형마트 오픈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신규 점포가 매주 어딘가에서 열렸고, 우리는 거기에 인력을 넣어야 했다. 보고서를 밤새 쓰고, 다음 날 새벽에 마트로 출발해서 오픈 준비를 도왔다. 잠은 인근 모텔에서 잤다. 젊어서 버틴 것 같다.
그 시절 내 옆자리에 박 차장님이 있었다.
박 차장님은 나보다 열 살 많았다. 말수가 많은 분은 아니었다. 사무실에서는 늘 조용히 본인 자리에서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도 박 차장님이었다.
신입 시절, 내가 맡은 매장에서 사고가 한 번 있었다. 채용한 인력이 출근 첫날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거다. 매장은 비었고, 고객사 영업 담당자는 난리가 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무실 책상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박 차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마디 했다.
"야, 일어나. 같이 가자."
같이 차를 타고 매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 박 차장님이 직접 전화를 돌려서 대체 인력을 구했다. 매장에 도착해서는 고객사 담당자한테 먼저 사과를 했다. 내가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박 차장님이 사과를 다 끝내고 나서 나한테 말했다.
"덕호야, 이런 건 네 잘못 아니야. 사람이 없어진 거지, 네가 없앤 게 아니잖아.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혼자 고민하지 마. 같이 해결하면 돼."
그 말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그 한마디.
또 한 번은 보고서 때문이었다. 월간영업회의에 운영안를 내야 하는데, 양식도 모르고 내용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끙끙대고 있었다. 박 차장님이 지나가다가 내 화면을 보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이거 어디서부터 막혔어?"
"전부 다요."
박 차장님이 웃었다. "그럼 처음부터 같이 하자."
그날 밤 11시까지 같이 앉아서 제안서를 썼다. 박 차장님이 직접 쓴 건 아니다. 옆에서 "이건 이렇게 풀어봐", "이 부분은 이런 관점으로 정리해봐"라고 방향만 잡아줬다. 결국 내가 손으로 다 썼는데, 다 쓰고 나니 새벽이었다. 차장님이 자기 가방을 챙기면서 말했다.
"덕호야, 너 잘 쓴다. 처음에 뭐가 막혔는지 모르겠네."
처음에 뭐가 막혔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게 고마웠다.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 차장님이 끌어준 거였는데, 마지막에는 내가 한 일처럼 만들어줬다.
힘든 일이 있는 날에는 같이 술을 마셨다. 그 시절 회사 근처에 작은 호프집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고 간판이 특이했던 것만 생각난다. 그 집 김치찌개를 안주로 시켜놓고, 차장님이랑 둘이 앉아서 한참을 마셨다.
대화는 별것 없었다. 박 차장님은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했다. 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오늘 매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객사 담당자가 어떻게 굴었는지, 어떤 직원이 어떻게 그만뒀는지. 듣고 나서 박 차장님이 짧게 한마디 했다.
"덕호야, 그 사람도 자기 사정이 있어. 미워하지 마."
"덕호야, 네가 다 잘할 필요는 없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해."
"덕호야, 이 일은 사람 일이야. 사람을 보는 게 먼저야."
지금 들으면 평범한 말들이다. 책에도 나오고, 강의에도 나오는 말들이다. 그런데 그 시절 새벽에 호프집에서 박 차장님 목소리로 들었던 그 말들은, 책에서 읽은 것과 달랐다.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면서 해주는 말이라, 머리로 듣는 게 아니라 가슴에 박혔다.
박 차장님은 몇 년 뒤에 다른 회사로 가셨다가 본인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그 후로 잘 안 풀리셨던 것 같다. 가끔 연락을 하다가 어느 순간 끊겼다. 나도 바빠서 먼저 연락드리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업부 전체를 운영하는 아웃소싱사업본부장이 됐다. 본부장 발령을 받으면서, 떠오른 사람 중 하나가 박 차장님이었다. 이 자리까지 온 게 내 능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작점에 수 많은 박 차장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 관리자나 매니저들한테 가능하면 따뜻하게 대하려 한다.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괜찮아, 같이 가자"라고 말한다. 제안서가 막히면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풀어준다.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술 한잔 사면서 별 말 없이 들어주려고 한다.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박 차장님이 나한테 해줬던 걸 똑같이 하는 거다. 잘하지도 못한다. 박 차님만큼 따뜻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흉내라도 내려고 한다.
가끔 후배들이 그런다. "실장님은 ○○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나는 그때 웃으면서 답한다. "내가 받은 게 있어서 그래요. 그거 갚는 거예요."
이 일은 도제식이다. 매뉴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옆 사람을 보고 배운다. 좋은 선배를 만나면 좋은 관리자가 되고, 나쁜 선배를 만나면 나쁜 관리자가 된다. 운이 크게 작용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좋은 선배를 만난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면, 내가 좋은 선배가 되는 건 다음 사람을 위한 일이다. 그렇게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만들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박 차장님은 지금 어디 계신지 모른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다.
가끔 생각한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뭐라고 말씀드릴까. 거창한 인사는 못 할 것 같다. "차장님, 저 아직 이 일 하고 있어요." 그 정도가 다일 것 같다.
그래도 그 말 안에 다 들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20년 전 그 호프집에서 들었던 말들, 새벽에 같이 차를 타고 매장으로 가던 길, "덕호야, 너 잘 쓴다"라는 한마디. 그 모든 게 지금까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는 것. 차장님이라면 다 아실 것이다. 말 안 해도.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선배의 한마디는 그 자리에서는 작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게 전부였다는 걸. 나는 수 많은 박 차장님한테 많이 받았고, 지금은 후배들한테 조금씩 갚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많이 모자란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박 차장님만큼은 못 된다.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거면 되는 것 같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