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에요, 누가 제 편 들어준 건"
매장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에 가장 까다로운 건, 고객도 틀리지 않고 직원도 틀리지 않은 상황이다. 양쪽 다 자기 입장에서는 맞는 말을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대부분 매장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직원 옆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봐주는 사람. 그게 얼마나 큰 힘인지를,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알게 됐다.
나른한 오후였다. 슬슬 퇴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객사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화가 잔뜩 실려 있었다. 지금 당장 매장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영문도 모른 채 나서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서울 한 대형 백화점 리빙 층. 거기에 우리 직원이 근무하는 리빙 브랜드 매장이 있다. 30대 초반 여성 스태프 하연(가명)이 고객에게 리빙 소품을 판매했는데, 고객의 실수로 제품이 파손된 상태에서 계속 환불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하연이는 안 된다고 재차 설명했다. 원칙대로.
그런데 그 고객이 소위 강성 고객이었다. 다음 날 다시 매장에 와서 고객센터까지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매장으로 내려와, 하연이에게 큰소리로 "관리자 나와"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침 매장에 들른 사람이 있었다. 우리 관리자 성민 파트장(가명). 30대 중반 남성이다. 성민 파트장은 처음에 정중하게 응대하려 했다. 그런데 고객이 워낙 강하게 나오면서, 점점 이야기가 커졌다.
결정적인 건 그다음이었다. 고객이 하연이를 가리키면서 "저 직원이 잘못 전달했다", "불친절하다", "나한테는 딴소리했다"며 몰아세우기 시작한 거다.
성민 파트장이 참지 못하고 고객에게 큰소리를 질렀다.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이 친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세요?"
당연히 고객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쏘아보면서 "두고 보자"고 하고 나갔다. 고객센터로 올라가 점장에게까지 이야기가 갔고, 거기서 고객사 담당자에게 전달이 된 거다.
고객사 담당자는 전화기 너머로 쏟아냈다. 지금이 평가 기간이라, 잘못하면 다음 매장 MD 때 자리가 이동될 수도 있다고. 당장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전달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파트장이 고객에게 큰소리를 친 건 분명 잘못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고객에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그건 맞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친구가 하연이 편을 들어준 거구나. 백화점도, 고객사도, 지나가던 고객들도, 그 순간 하연이 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텐데. 그나마 우리 관리자가 거기 있어서, 같은 편이 되어준 거다.
방법이 틀렸을 뿐,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매장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연이는 울고 있었다. 성민 파트장은 씩씩거리면서도 하연이 옆에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쉬는 날 갑작스러운 연락에 출근한 남자 매니저는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연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울다 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랬더니 성민 파트장이 옆에서 꼼꼼하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고객이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하연이가 어떻게 응대했는지, 본인이 왜 참지 못했는지.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건으로 고객사나 매장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지가 뭘 책임진다고. 참.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하연이가 겨우 말을 이었다. 아까까지 울어서 목소리가 잠겨 있었는데, 마지막 한마디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파트장님이 제 편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데 어떡해…"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거다. 자기 때문에 파트장까지 곤란해진 게.
나는 성민 파트장에게 업무 복귀하라고 하고, 내일은 하루 쉬라고 했다. 하연이도 마찬가지. 오늘은 내가 처리할 테니 둘 다 집에 가라고.
고객센터로 올라갔다. 화가 잔뜩 나 있는 고객을 만났다. 1시간 동안 정중히 사과했다. 듣고, 공감하고, 고개 숙이고. 다만 원칙은 지켰다. 파손된 제품의 환불은 어렵지만, 다른 제품을 매우 저렴하게 제공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고객님, 저희 스태프가 많이 울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클레임 거신 것은 취소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객님이 저희 편을 들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누군가의 딸이라는 말에 고객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백화점에도 정중히 사과드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 고객사에도 연락했다. 혹시라도 이 일로 약간이라도 피해가 되면 책임자로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겠다고. 한 번만 기다려달라고.
그날은 하루 종일 머리 숙이고 잘못했다고만 이야기한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보람이 있었다.
다음 날, 고객은 클레임 접수를 취소했다. 서로 약속한 대로 다른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해가셨다. 그때 우리 매장 매니저가 능글맞게 잘 응대한 건 덤이다.
백화점에서도, 고객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해당 고객 잘 처리해줘서 고맙다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성민 파트장이 쉬고 온 다음 날, 내 자리로 와서 고개를 숙였다. "실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그랬다. "뭘 죄송한대?"
멀뚱멀뚱 쳐다보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동료 편을 들어준 건데, 그게 어떻게 죄송한 일이야."
그리고 하연이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를 보여줬다.
"처음이에요, 누가 제 편 들어준 건."
성민 파트장이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자리로 갔다. 눈이 빨개진 건 본 척 안 했다.
매장에서 일하다 보면, 편이 없는 순간이 온다. 고객은 화가 나 있고, 백화점은 보고를 요구하고, 고객사는 클레임을 걸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스태프는, 자기편이 아무도 없다는 걸 느낀다.
그때 옆에 서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게 전부가 된다. 방법이 서툴러도,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같은 편이라는 느낌 하나가, 그 사람을 버티게 한다.
우리 파트장이 고객에게 소리를 지른 건 잘못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하연이한테 "처음이에요"라는 말을 들은 건, 그만큼 이 현장에 편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은,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방법으로 같은 편이 되어주는 거다. 그걸 우리 파트장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매장에서 가장 필요한 건, 매뉴얼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다. "내가 네 편이야"라는 한마디다. 그 한마디가 있는 매장은, 사람이 남는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