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8년차가 관리자가 되었을 때 벌어진 일
학벌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장이 사람을 만든다. 나는 그걸 믿는 쪽이다. 그런데 믿는 것과, 그 믿음이 현장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건 다른 일이다.
주영이(가명) 이야기를 하려 한다.
주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에 패션 매장에 들어갔다. 대학은 가지 않았다. 형편이 안 됐는지,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다만 이 아이가 패션을 진짜 좋아한다는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매장 진열을 바꿀 때 눈빛이 달라지는 사람이었다.
8년을 내리 패션 스토어에서 일했다. 매장 연출, 재고 관리, 스태프 교육, POS 시스템, 외국인 고객 응대, 매장 청결까지. 못 하는 게 없었다. 특히 어려운 매장을 맡으면 진가가 발휘됐다. 매출이 바닥인 곳을 맡기면 두세 달 안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이유를 물으면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매장에 누구보다 오래 서 있었고, 고객 한 명 한 명을 놓치지 않았고, 스태프들에게 자기가 아는 것을 아낌없이 알려줬다. 똑순이라는 말이 이 아이한테 딱 맞았다.
나는 주영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작년, 우리 수도권운영팀 패션파트 관리자 자리가 비었을 때 주영이에게 제안을 했다.
주영이는 고민을 했다. 생각보다 오래.
"실장님, 저 고졸이에요. 그리고 이제 스물아홉이고요. 관리자를 하려면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답하며 설득했다. "주영아, 이력서에 적힌 거 말고 너가 매장에서 보여준 걸로 판단하는 거야. 너만큼 현장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패션을 사랑하는 아이라, 결국 하겠다고 했다. 본인도 솔직히 해보고 싶었을 거다. 자기가 8년 동안 매장에서 쌓아온 것들을 더 넓은 범위에서 펼쳐보고 싶었을.
처음 몇 달은 좋았다. 주영이는 관리자가 되고 나서도 본인이 직접 매장을 뛰어다녔다. 경기 남부의 한 대형 백화점 패션 매장들을 순회하면서, 진열 상태를 점검하고, 신규 스태프에게 접객 교육을 하고, 고객사 요청 사항을 현장에 전달했다. 에너지가 넘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은 매니저 쪽에서 먼저 나왔다. "어린 게 관리자라고 이것저것 가르치려 든다." "얼마 전까지 같이 매장에서 옷 접던 애가." 대놓고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도 들었고 현장에서 그런 말은 돌고 돌아 결국 당사자 귀에 들어간다.
나이 어린 스태프 쪽에서도 나왔던 것 같다. "나랑 같은 매장에서 판매하던 언니인데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어느 학교 나왔대?" 관리자가 되면 말투도 달라지고 요구 사항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예전에 동료였던 사이에서는 그게 '변했다'로 읽히는 거다.
주영이는 그 말들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 알았을 거다. 현장에서 8년을 살아남은 아이니까.
그러다 일이 터졌다.
한 패션 브랜드의 신규 매장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픈 전부터 챙길 게 산더미였다. 진열 연출 작업, 상품 배치, 고객사 가이드라인 반영까지. 주영이는 고객사 요청을 듣고 그대로 현장에 전달했다. 디스플레이 위치를 바꿔야 하고, 행거 간격을 조정해야 하고, 조명 각도도 맞춰야 한다고.
그런데 이게 현장 스태프들에게는 달리 들렸나 보다. 새로 입사한 본인과 비슷한 또래 스태프가 먼저 반발했다. "그건 우리가 이미 세팅한 건데 왜 바꿔요?" 주영이가 "고객사에서 요청한 사항이야"라고 설명했지만, 분위기는 이미 틀어져 있었다. 다른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주영이가 위에서 시키는 대로 갑질한다"는 말이 돌았다.
사실을 따지면 주영이가 잘못한 건 없다. 고객사 요청을 전달한 것뿐이다. 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관리자로서 아직 서툴렀던 거다. 같이 매장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이거 이렇게 바꾸자" 하면 바로 통했는데, 관리자가 되고 나서는 같은 말이 '지시'로 들리는 거다.
오해는 대화를 통해 풀렸다. 그런데 주영이는 그 뒤부터 완전히 위축됐다.
매장 순회를 안 나갔다. 나가더라도 예전처럼 이것저것 짚어주지 않았다. 스태프 교육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문제가 있어도 "내가 말하면 또 그런 소리 듣겠지" 싶어서 넘어가는 것 같았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일부 매장에서 청결 상태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진열 가이드가 안 지켜지는 곳도 생겼다. 어떤 고객사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왔다. "현장 관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주영이를 현장으로 보내기엔 눈에 밟혔다. 이 아이의 실력을 아니까.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관리자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고민 끝에, 주영이를 데리고 한 번 백화점 매장을 같이 돌기로 했다. 내가 먼저 가자고 했다. 보고서가 아니라 매장을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전에 만나서 패션 매장 네다섯 곳을 함께 돌았다.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다. 매장 상태를 보면서 주영이가 먼저 뭔가를 느끼길 기다렸다.
세 번째 매장에 들어갔을 때, 주영이가 멈춰 섰다. 행거에 걸린 옷들이 사이즈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고, 피팅룸 앞에 반품 상자가 쌓여 있었다. 예전의 주영이였으면 들어가자마자 정리했을 장면이다.
주영이가 조용히 말했다. "실장님, 이거 우리가 안 챙긴 거예요."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영아, 너도 보이지?"
"네. 보여요."
"그럼 왜 안 했어?"
한참 말이 없다가, 주영이가 입을 열었다. "말하면 또 오해받을까 봐요. 제가 뭘 지적하면 '또 저러네' 할 것 같아서.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나는 주영이한테 내 이야기를 해줬다. 나도 처음 관리자를 맡았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동료한테 피드백을 주면 "쟤가 뭔데"라는 말이 돌았고, 안 하면 매장이 망가졌다고. 그 사이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다고.
"근데 주영아, 네가 안 하면 이 매장 누가 챙겨. 너 아니면 저 행거 사이즈 뒤죽박죽인 거 아는 사람이 여기 없어."
주영이가 고개를 들었다.
"혼내는 게 아니야. 방향을 잡아주는 거야. 그리고 방향을 잡아주는 건, 그 매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거야. 학벌이 하는 게 아니고, 나이가 하는 게 아니고. 그건 너잖아."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근데 말하는 방식은 좀 바꿔보자. '고객사에서 이렇게 하래'가 아니라 '우리가 한 번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로. 지시가 아니라 같이 고민하는 톤으로. 네가 8년 동안 매장에서 한 방식 그대로야. 관리자라고 다른 말을 할 필요 없어."
그날 오후, 주영이가 네 번째 매장에 들어가서 스태프에게 말하는 걸 봤다.
"언니, 여기 행거 앞쪽에 S 사이즈 넣으면 고객 눈에 더 잘 들어올 것 같은데, 같이 바꿔볼까요?"
스태프가 웃으면서 "그래? 그럼 해보자" 하더니 같이 옷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영이가 뒤에서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게 맞는 거다. 네가 원래 잘하던 거다.
주영이는 아직 스물아홉이다. 관리자 경력은 이제 1년도 안 됐다. 서툰 부분이 많다. 보고서도 어설프고, 회의에서 말도 잘 못한다. 뒷말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닐 거다, 그렇지만 성과도 있다. 얼마전 오픈 한 매장에 브랜드 임원이 다녀가고 "뉴비즈원이 맡으니 매장이 브랜드 모델처럼 이뻐졌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주영이 표정은 덤.
나는 주영이를 앞으로도 믿고 이 자리에 두려 한다. 이 아이는 매장에서 자란 사람이다. 현장의 온도를 아는 사람이다. 행거 간격이 3센티 넓으면 매출 동선이 달라진다는 걸 감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건 대학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8년 동안 매장 위에 서서 몸으로 익힌 거다.
관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주영이는 지금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넘어지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넘어졌을 때 "일어나" 하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옆에서 같이 매장을 걸으면서 "너는 이걸 알잖아"라고 말해주는 거다. 그게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HR/아웃소싱 20년차 직장인입니다. 리테일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