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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구경

비 오는 날 남창장에서 개똥철학

by 발광머리 앤

단지 그 생각밖에 없었다.

오늘 장에 가야 한다는 것

살 게 좀 있었다.


올 초 새로 이사 온 주상복합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한참 운전하며 가다 보니

"어, 비가 오고 있네."


이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삶인가.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후퇴를 모르는 나는

그냥 남창장으로 내뺐다.


갔더니 한산하고

한 차가 장 안으로 들어간다

장날, 그 붐비는 남창장에

언제 차를 몰고 들어갈까 싶어

그 차를 따라갔다.


한 걸음이라도 덜 걸으려고 장 가까이 대고

들어갔다.

지붕이 있는 곳엔 장이 섰다.


돌아다니며 두부 사고

아욱 사고

유기농 계란이 있다.

할머니가

한 바구니 가져다 놓았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만 이천 원.

만원 안되냐고 했더니

원래 만 오천 원이란다.

비도 오는데..

계란 도로 가져갈 수도 없을 텐데


발길을 돌려 가는데

이천 원 깎겠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바퀴 돌아

만 이천 원에 달걀 한 바구니 사고


얼마 전 새로 나온

햇 옥수수를 오천 원어치 사고

국숫집에 들어가는데

지붕 있는 장도 있는데

굳이 파라솔도 안 펴고 비 오는데

혼자 않아 콩나물 파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 왜 저리로 안 가고 비를 맞고 계신가요?

제가 옮겨드릴까요?

하는 마음속 소리를 외치며


국수를 먹으러 갔다.

이 지역 최고의 비빔국수라고

생각한다.

하나

오늘은 물국수

고추 다진 거 달래서

넣어 먹는데

양이 너무

많다.


남겼다.

몇 가닥.

국수를 먹다 보니

비 맞으며 콩나물 파는 할머니한테

계속 손님이 온다.


저거 할머니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참 착한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국수를 먹고 복숭아를 사러 가는데

마늘 아저씨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다.

"누가 여기다 차 세웠냐고! 주차장 버젓이 두고."

순간 간이 콩알만 해짐.

내 차는 아니나

이따가 나도 혼나는 거 아닌가

쫄음.


복숭아 사가지고 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차 옆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도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를 친다.


아까 차 세우고 갈 때는 그냥 보기만 하더니.


비가 와서 장사가 안 되니까

기분이 나빠서 저러나 보다

생각하고


죄송하다고 얼른 차를 뺐다.


오면서 생각한 거.

만 이천 원 달걀을 비 온다고 후려쳐서 만원에 사려던 내 심보.

비 맞는 할머니한테 콩나물 사던 많은 사람들

한산해서 장사에 굳이 방해가 되지 않는데도

차 빼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마늘 아저씨

그 옆에서 전염된 감정으로 나한테 소리치던 아줌마.

이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의 감정인 것이다.

그냥 그러하다.


어제 우연히 별로 좋아하지 않던

김미경 강사의 '친하던 사람과 관계가 나빠졌을 때'

란 동영상에서

굳이 얽히고설킨 감정을 풀지 말고 그냥 두고 떠나라

거기까지 였을 뿐이다.

라고 했듯이


내 안에, 니 안에 좋은, 나쁜, 싫은, 기쁜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설키고 굳이 기분 나쁠 것도 없는 그런 것들이다.

그렇게 놓고 쿨하게 지나가자.


비 오는 날 남창장에서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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