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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Jun 29. 2019

버려야 할 엄마한테 받은 것

어제 꿈에 

차를 타고 어디를 갔다.

동승자는 지금 집을 설계해준 설계사와 그의 아내,

나와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차는 10년 넘은 낡은 현재의 내 차

내가 운전하고 있다.

경주 현장 근처를 운전하는데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고 있고 기와집들은 땅으로 가라앉고 

지붕만 보인다.

그 지붕들이 아름다우면서 안타깝다.


길은 배 모양이다.

배 갑판은 공원이고 아래로 길이 나 있고

길은 황토길처럼 붉다. 

나는 그 길을 운전한다.


어쩌다 

온실처럼 천정이 유리로 된 곳으로 들어왔다. 

출구를 찾다가 문앞에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아래는 가파른 길이다. 

잘못 운전하면 큰일나겠다.


차에 엄마가 준게 가득하다

부직포같은 이상한 이불. 발같은게 뜯겨나간  못입는 옷

설계사의 아내가 이걸 다 버린다

차가 무거워서 안 가간다는 거다.

나는 이걸 다시 끌어안고 차에 담으려고 한다.


쓰다보니 명확해진다.

1. 설계사의 아내는 설계사의 여성성이다. 

학번이 같은 이 설계사는 내가 해달라는대로 도면을 그려줬다.

  문은 여기에, 창은 여기에,


시공을 하려니 문이 여기 있어서 소굴같아요. 이상해요. 이걸 팔 때 이것때문에 힘들지도 몰라요

살 때 힘들어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시공전에 그 말을 설계사에게 하니

"뭐라 하든 니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뭐 그것까지 생각해요?"


엄마는 늘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모든 경우를 대비한 해결책을 찾았으나 

스스로 원하는 건 늘 부정했다. 


지금 나도 그렇다.


2. 오늘 싱크대 상판을 닦으며 생각했다.

"어, 이거 오랜만인데?"

나는 설겆이가 하기 싫다. 싱크대도 닦기 싫다.

엄마는 내가 설겆이를 하면

(5학년때부터 설겆이 빨래를 했다.)

꼭 안 씻긴 곳을 가리키며 다음에는 더 잘 닦으라고 했다.

나같으면 고맙다고 하겠구만

그래서 나는 더 잘 닦으면 

또 잘 닦으라고 했다

한번도 완성된 칭찬을 받은적이 없다.

그래서 난 설겆이를 안 한다.

닦아도 닦아도 어디에 뭔가가 남아 있을거니까.

나는 늘 지저분하게 뭔가를 남기는 애니까.

잠시 침묵하며 그 아이에게 애도를 보낸다.


"뭐 어디 얼룩이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


어제 상판을 고르는데 주인이 말했다.

"까만게 예쁘긴 한데 기스가 잘 나고 더러움이 잘 보여요."

이럴 땐 무조건 포기한다.


나한테 예쁜건 중요하지 않고 실용성 내구성이 중요하다.

이것도 엄마의 가치기준이다.


나는 까만 상판을 고르련다.


3. 고등때 일이다.

엄마가 모충시장에 장농을 사러가는데 나를 데려갔다.

가구점에 들어서며 엄마는 가구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서 젤 싼 게 얼마요?"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엄마는 그렇게 물었다.


엄마의 등을 보며 결심했다.

"내가 돈 벌면 엄마한테 좋은 장농 사 줘야지."


그 어른의 짐을 진 어린 애에게 잠시 애도를 보낸다.


나는 돈을 벌어서 엄마한테 장농을 사줬다.

엄마앞에서 보란듯이 백화점 맘에 드는 이불을 샀다. 가격도 안 보고.


하지만 나는 아직 돈돈하며 싼 걸 찾는다.


그녀에게 애도를.


장이나 가야겠다

4일장이 어디더라??

불국장이긴 한데 좀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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