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광머리 앤 Aug 23. 2019

엄마의 김밥

소풍날이면 엄마는 김밥을 쌌다.

부엌 바닥에 앉아 김밥을 말며 엄마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송이 엄마(엄마끼리, 딸끼리 친구)는 직장 다닌다고 김밥을 사서 보내지만 나는 너희들 교육을 

위해 싸서 보낸다."

나는 속을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김밥은 맛이 없었다.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빠때문인지 밥은 늘 소화되기 좋다는 이유로 질었다.

김밥을 만들 밥도 질었다.

칼질을 제대로 못하니 김밥은 늘 옆구리가 터졌고

옆구리가 터지는 이유가 김밥이 얇아서 라고 생각한 엄마는

밥을 무진장 많이 넣었다. 

김밥을 잘 말지도 못하니 김밥 속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다.


그렇게 싼 김밥은 질고 크고 못생겼다.

하나만 입에 넣어도 입이 터져나가고 목에 메었다.

나는 엄마의 김밥이 창피했다.


다른 아이들의 김밥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낙엽모양, 계란 김밥, 네모난 김밥이 황홀했다.

아이들 김밥을 하나씩 맛보겠다고 오는 선생님이 저승사자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정말 예쁘고 맛있는 김밥을 싸서 줄거야.'


세월이 흐르고 흘러

6살 아들이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게 되었다.

나는 예쁘고 맛있는 김밥을 싸려고 이 주일 전부터

인터넷 검색에 돌입했다.

온갖 맛있는 김밥 레시피를 모으고 분석했다.

분석결과

맛있는 김밥에는 조린 우엉이 들어갔다.

며칠동안 장을 봤다. 

하루는 우엉을 샀고 

하루는 시금치를 샀으며

소풍 마지막날엔 오이를 샀다.

나는 그때까지 엄마처럼 오이를 넣을지 아니면 인터넷 레시피대로 시금치를 넣을지 

정하지 못했다.


소풍 전날 꿈에서

밤새도록 김밥을 쌌다.

이렇게 싸면 여기가 터지고

저렇게 싸면 저기가 터졌다.

꿈에서도 이게 꿈인지 알았다.

차라리 일어나서 김밥을 싸자는 생각이 들어

새벽 네시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그때부터 내 김밥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어느 한 해는 목요일 야간수업을 끝내고

퇴근하니 아이가 내일이 소풍날이라고 했다.

유난히 바쁘던 주라 미처 챙기지 못했다.

어쩌냐고 했더니 

초2인 아들이 말했다.

"엄마, 걱정마. 그래서 내가 김밥을 사다 놓으려고 아파트 앞 

김밥집에 갔더니 내일 아침에 이천원만 들고 오래. "

눈물이 조금 났다. 


아이가 고 2 수학여행을 가던 날도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놓았는데 그걸 두고 갔다.

싱크대 위에 그대로 놓여있는 김밥을 보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김밥을 싸 놓았는데 그걸 두고 가다니!!

이세상에 아침잠 많은 나를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게 만들 사람은 아이들밖에 없다. 


아이가 전화를 하자 점심은 어찌했냐고 했더니

친구걸 먹었단다. 


아이가 고등학교때는 아침마다 김밥을 쌌다.

잠이 부족한 아이가 차에서 먹으라고 맨 김에 파김치 한 줄

계란, 소시지 한 줄을 넣어서. 


그렇게 김밥을 싸다보니 

김밥에 맺힌 한이 없어졌다.

그간 아이들에게 먹였던 김밥은 사실

어린 내가 먹은 것 같다. 


그 김밥을 다 먹은 나는 

엄마에게 못 받은 것에 대한 한도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고자 했던 

나의 엄마됨도 다 소화시켰다. 


어느날 문득 엄마랑 똑같은 모습을 한 거울속의 나를 보며,

문득 튀어나온 말이 어릴 적그렇게 듣기 싫었던 말이었을 때

허허 웃음이 나는 걸 보면.

매거진의 이전글 ,잊고 있었던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