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큰 미련은 없다.
아니 있다.
주방은 나에게 멀고도 가까운 이라 쓰다가 고쳐 쓴다.
멀고 먼 존재이다.
어렸을 때 살던 한옥의 부엌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엄마가 출근하면서 스뎅 공기에 동생 젖을 짜서 부뚜막에 올려놓은
것이다. 누런 젖이 있었고 부뚜막은 미지근했다.
아궁이에 불을 땠었고, 마당에서 움푹 들어가 있었다. 뒤꼍으로 나가면 수도가
더 있었던 것 같다.
부엌엔 앞뒤로 문이 있었는데
각개전투로 하면 다 나한테 지는 언니와 동생이
내가 부엌에 있을 때
하나는 앞문으로
다른 하나는 뒷문으로 합심하여 공격해 올 때
나는 부엌칼을 집어 들고
그들을 막았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건 생각안나지만
이 전투에서 지면 끝이라는 본능적인 절박함에
칼을 집어 들었던 생각이 난다.
내가 칼을 집어들자 그들은 도망쳤다.
명예퇴직을 한 엄마는 살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난 엄마한테 부엌살림에 대해 배운게 없다.
다 책으로 배운 지식 뿐이다.
눈대중도 못하고
저울에 재는 걸 싫어하고
대충 감으로 때우는 나는
엄마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우리 애들에게 내가 해준 음식을 꼽으라면
일요일 아침에 해 주던
오븐용기에 삼겹살과 묵은지를 번갈아 쌓아 올려 익힌
어느 인터엣 사이트에서 보았는지 생각도 안나지만,
그런 요리를 내가 생각해냈을리는 절대 없는,
김치찌개도 아닌 것이,
김치찜도 아닌 것이,
뭐라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일 거다.
4년전 집을 팔고 전세를 가면서 오븐이 없어지자
그마저 못해먹었다.
이제 새 부엌에는 오븐레인지를 샀으니 다시 해 먹을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 그 김치삼겹살찜을 놓고 둘러앉아
네 식구가 밥을 먹을 날이 오겠지?
더우기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한 전기인덕션
프랑스어로 박사자격고사까지 치렀지만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제품 설명서를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겁나서 불도 못 켜 봤다.
저기에 음식을 해 먹을 수나 있을까 겁이 난다.
부엌칼을 들고 싸우던 나는 어디가고
겁쟁이 중년 아줌마만 남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