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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Dec 03. 2020

오후 산책

오늘은 수능날이라 그런지 추웠다.

그래서 오후 2시쯤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달리 시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요즘 경주역 뒤 관사마을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100년된 일제시대 공장이 리모델링되고

오래된 집이 헐리고 새로 들어선다. 

경주고 뒤 진량사지를 지나서

관사마을을 지나서 쪽샘마을로 향하는데

요즘 김장을 하는지 집집마다 

마당에 배추를 쌓고 있다.


누가 담밑에 배춧잎을 무더기로 버려놓았다.

검은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회색운동복에 땡땡이 바지를 입은 

어떤 아줌마(요즘은 아줌마들이 서로 여사님이라고 부른다)가

버려진 배춧잎을 보며 화를 낸다.


지나가며 누가 배춧잎을 버렸나봐요 했더니

자기 집앞에 버려서 자꾸 굴러들어온다고 

한다. 그러고 서로 갈길을 갔다.


첨성대를 돌아

러시안세이지 밭 앞에서 또 만났다.

아는척할까 망설이는 사이 아줌마가 나를 세워놓고

산책길에 만난 불쌍한 강아지 이야기를 하며

나보고 같이 가보잔다. 

얼떨결에 여사님을 따라 나섰는데

오줌이 마렵다며 철길 으슥한 곳으로 간다.

혹시 인신매매단(?)을 의심하기엔

내가 너무 상품성이 떨어진다. 


누가 강아지를 굶기고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밥이랑 물이랑

담요를 줬단다. 경주엔 보신탕집이 있어서 그냥 저렇게 

방치하며 키우기도 한단다. 

나는 내가 왜 이 여사님을 따라가고 있는지 좀 이해가 안됬으나

강아지가 어딨는지도 궁금하고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찌날까 궁금하기도 해서

따라갔다. 


강아지 앞에서 서로 헤어지고 

오는데 배가 고파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초등 5학년이라면

"야, 불쌍한 강아지 있는데 거기 가보자."

"그러자."

히고 따라갔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50대 아닌가?

내안에 동심이 아직 살아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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