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팔로우하는 블로그에서
이 책에 대한 언급을 보았다.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해 보았더니 대출 중이라고 한다.
한 텀 더 기다려 책을 빌렸다.
책 표지는 촌스러운 편.
부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이다.
지은이는 모리사키 가즈에
아버지가 교사로, 갓 결혼한 어머니와 조선으로 건너와
가즈에와 남동생을 낳았다.
그러니까 가즈에는 조선에서 출생한 일본인이며
사춘기가 될 때까지 조선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구라지는 공립 보통학교 교원으로 일반적인 식민지 일본인들과
다른 사상을 가졌다. 가즈에가 초등학생일 때 자녀를 양육하는 방침을
적어 내라고 했을 때, 구라지는 '자유방임'이라고 쓴다.
그것을 본 초등 담임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그다음부터 가즈에를 차별한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자유가 아니라, 일본의 동북아공정을 위한
일체적인 사상을 가졌고,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들 사이에서 아버지 구라지는 조선과 일본의 경계에 선 자이다.
가즈에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사상에 물들고, 아버지의 자유방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즈에가 열 살 무렵, 이런 아버지는 경주의 한 조선인 유지와 함께 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다. 바로 현재도 명문으로(경주고가 과연 명문인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경주고 출신들이 기함을 할 일이나, 얼마 전 경주고를 지나다가
걸린 플래카드에 이석기 선배의 초청 강연 소식을 듣고, 구라지가 관 뚜껑을 열고
일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외 경주고 앞 화단에 기념식수를 한 몇몇 선배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알려진 경주고와
경주중의 학원재단인 수봉학원이다. 경주 이 씨 이수봉 선생이 구라지에게 학교를 같이 세우기를
권하고, 구라지는 이에 응하여, 경주로 이주를 한다.
첫 장에 가즈에는 4살 정도에 아버지와 산책했던 일화를 쓰고 있는데,
경주 이주 후의 삶도 소상히 기억하고 써 놓았다.
경주고 근처에 살았고, 집에서 보이던 풍경을 기술해 놓은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집 근처인 듯하여 더 감정이 이입되었다.
가즈에의 경주에 대한 인식 중 하나는
대구는 부자들이 많았지만, 경주는 양반들이 많고, 이들은 정신적 지주이며
자신의 사회에 대한 의무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구에서는 일본 아이들만 다니던 학교에 다녔으나 경주에서는 조선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조선사람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가즈에는
가해자이나 피해자의 마음을 가졌다.
조선인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나 가즈에를
알지 못하는 조선인들은(특히 남자애들은) 자신에게 팔뚝질을 한다.
그 복잡한 경계에서 가즈에는 성장한다.
일본이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더욱 강화되는 내선일체 분위기에서
아버지 구라지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자유를 잃지 않도록,
전쟁에 내몰리지 않도록 여러 가지 은밀한 방법을 동원한다.
어머니가 경주에서 병사하고,
아버지가 수봉학원을 떠나 김천의 학교로 옮기게 되자
가즈에는 대구의 학교에서 김천의 학교로 전학을 하고
아버지를 모시며 살다, 패전 후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 가즈에는 여성주의, 사회주의(? 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운동을 하며, 보통의 일본인의 삶과 사상을 가지지 않는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특히 패전한 일본에서 자신의 설자리를
찾지 못한 남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버린다.
가즈에 또한 자녀가 없었다면 남동생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듯하다.
책을 읽고,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일본인이 아니라,
전범이요 가해자인 일본인 사이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구라지와 그 영향력 아래 자랐던
가즈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책에서 아이의 삶, 당시 조선인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당시 아이들이 놀았던 놀이(가즈에가 식모 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처음
널뛰기를 했을 때의 느낌), 주거형태, 시가지의 모습들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에 대한 가즈에의 세밀한 느낌도 나에게는 귀하게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