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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Aug 07. 2016

정의와 평화

나는 어딜가나 모두가 공평한지 누군가 농땡이를 치거나 더 많이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이런게 눈에 보여요.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이 발표회를 열었어요. 엄마들이 음식을 하나씩 가져가야 했어요. 어떤 엄마는 끝까지 자기가 가지고 간 음식을 풀지 않고 싸 놓은 채로 두었다가 아무도 안 먹으니까(풀어놓고 먹을 수 있게 잘라놓았으면 누군가는 먹었겠지요) 도로 가져가더라고요. 그 인색함에 마음이 상하더라고요. 이런 게 눈에 안 띄고 재미있게 놀다 오면 좋으련만 안보려해도 눈에 띄는게 내 병이에요.

설거지를 쌓아놓던 이태리 농가의 부엌

어렸을 때부터 그랬대요. 엄마는 학교 가고 막내 동생이랑 우리를 돌봐주는 언니, 할머니 들이 집에 있었는데 동생한테 잘 못하거나 제대로 안 돌보면 세살 많은 내가 언니, 할머니들한테 쫓아가서 잔소리를 했대요. 아마 학교 들어가기도 전일거에요. 그래서 날 미워해요. 울 언니는 천지분간을 못 하고 자기 좋은대로 사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언니는 좋아했어요. 


한 아줌마는 대놓고 농땡이를 치는 건 아닌데 늘 뭔가에 홀려있어요. 경치라든가 실내장식이라든가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아요. 사다리타기를 해서 식사당번과 설겆이 당번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설거지를 안하고 그냥 둬요. 계속 그냥 뒀다면 그 아줌마가 했겠지요. 그런데 설거지를 다른 아줌마가 해요. 그러다 보니 늘 설겆이는 이 아줌마가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또 그런 꼴을 못 보거든요. 그래서 설거지 아줌마에게 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에요. 나중에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나중에 여행에 합류해서 예약도 같이 못하고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여행에서 자기가 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이 팀이 평화롭게 굴러가는 것이 더 좋다. 오히리 설거지 하지 말라고 하는 내가 더 힘들다'는 거에요. 


나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나처럼 모든게 공평하게 돌아가는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그리고 설거지 아줌마처럼 자기가 좀 일을 더 하더라도 그걸 인정받고 모두에게 큰소리 나지 않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3학년이며 전교에서 공부잘하고 반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언니가 우리 반에 왔어요. '사회공책 빌려줄 사람?"그러니까 아이들이 줄을 서서 사회공책을 헌납했어요. 우리반 꼴찌며 엄마가 없어서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는 내 짝도 그 줄에 섰어요. 언니가 아이들 공책을 모두 가져갔다가 다시 돌려주자 내 짝꿍은 '##언니가 내 공책을 봤어. 어딜 봤을까?"그러면서 공책을 뒤적였어요. 


집에 가서 언니한테 걔공책은 왜 가져갔냐고 딱보면 모르겠냐고 했더니 언니가 '걔 공책을 보지 않았지만 그냥 걔공책을 가져갔다가 돌려주면 걔가 얼마나 좋아할텐데 그걸 안 가져가냐'고 하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엔 관심도 없고 그걸 돌본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나한테는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언니를 좋아해요. 일은 내가 다 하고 문제해결은 내가 다 하는데 나중에 보면 다 언니랑 친해있어요. 언니는 한 것도 얼마 없는데요.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몰라요.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잘 모르고, 자기가 조금더 일하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여행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네요. 아이들한테도 마음으로 칭찬하고(네가 그래줘서 고마워 엄마가 힘들뻔했는데 네가 없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겠어요. 

그 아줌마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 아말피의 마지막 숙소


설거지는,

나중에 설거지 아줌마도 그냥 쌓아두게 되었어요. 다른 아줌마가 드디어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어요 '난 이런거 쌓아놓고 누가 하나 두고 보는 거 못한다'면서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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