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딜가나 모두가 공평한지 누군가 농땡이를 치거나 더 많이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이런게 눈에 보여요.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이 발표회를 열었어요. 엄마들이 음식을 하나씩 가져가야 했어요. 어떤 엄마는 끝까지 자기가 가지고 간 음식을 풀지 않고 싸 놓은 채로 두었다가 아무도 안 먹으니까(풀어놓고 먹을 수 있게 잘라놓았으면 누군가는 먹었겠지요) 도로 가져가더라고요. 그 인색함에 마음이 상하더라고요. 이런 게 눈에 안 띄고 재미있게 놀다 오면 좋으련만 안보려해도 눈에 띄는게 내 병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대요. 엄마는 학교 가고 막내 동생이랑 우리를 돌봐주는 언니, 할머니 들이 집에 있었는데 동생한테 잘 못하거나 제대로 안 돌보면 세살 많은 내가 언니, 할머니들한테 쫓아가서 잔소리를 했대요. 아마 학교 들어가기도 전일거에요. 그래서 날 미워해요. 울 언니는 천지분간을 못 하고 자기 좋은대로 사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언니는 좋아했어요.
한 아줌마는 대놓고 농땡이를 치는 건 아닌데 늘 뭔가에 홀려있어요. 경치라든가 실내장식이라든가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아요. 사다리타기를 해서 식사당번과 설겆이 당번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설거지를 안하고 그냥 둬요. 계속 그냥 뒀다면 그 아줌마가 했겠지요. 그런데 설거지를 다른 아줌마가 해요. 그러다 보니 늘 설겆이는 이 아줌마가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또 그런 꼴을 못 보거든요. 그래서 설거지 아줌마에게 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에요. 나중에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나중에 여행에 합류해서 예약도 같이 못하고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여행에서 자기가 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이 팀이 평화롭게 굴러가는 것이 더 좋다. 오히리 설거지 하지 말라고 하는 내가 더 힘들다'는 거에요.
나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나처럼 모든게 공평하게 돌아가는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그리고 설거지 아줌마처럼 자기가 좀 일을 더 하더라도 그걸 인정받고 모두에게 큰소리 나지 않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3학년이며 전교에서 공부잘하고 반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언니가 우리 반에 왔어요. '사회공책 빌려줄 사람?"그러니까 아이들이 줄을 서서 사회공책을 헌납했어요. 우리반 꼴찌며 엄마가 없어서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는 내 짝도 그 줄에 섰어요. 언니가 아이들 공책을 모두 가져갔다가 다시 돌려주자 내 짝꿍은 '##언니가 내 공책을 봤어. 어딜 봤을까?"그러면서 공책을 뒤적였어요.
집에 가서 언니한테 걔공책은 왜 가져갔냐고 딱보면 모르겠냐고 했더니 언니가 '걔 공책을 보지 않았지만 그냥 걔공책을 가져갔다가 돌려주면 걔가 얼마나 좋아할텐데 그걸 안 가져가냐'고 하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엔 관심도 없고 그걸 돌본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나한테는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언니를 좋아해요. 일은 내가 다 하고 문제해결은 내가 다 하는데 나중에 보면 다 언니랑 친해있어요. 언니는 한 것도 얼마 없는데요.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몰라요.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잘 모르고, 자기가 조금더 일하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여행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네요. 아이들한테도 마음으로 칭찬하고(네가 그래줘서 고마워 엄마가 힘들뻔했는데 네가 없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겠어요.
설거지는,
나중에 설거지 아줌마도 그냥 쌓아두게 되었어요. 다른 아줌마가 드디어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어요 '난 이런거 쌓아놓고 누가 하나 두고 보는 거 못한다'면서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