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가다 외국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의 옷차림이 화제가 된다. 어딜 가더라도 한국인 관광객들은 티가 난다는 것이다. 특히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등산복이 여러가지 면에서 편하기는 하다. 땀에 젖어도 금방 마르고, 신축성도 좋다.
유럽에서 미국인 관광객들도 쉽게 눈에 띄인다. 이들은 주로 파스텔톤 옷을 입는다. 미국에서 보면 이들의 옷이 잘 어울린다. 햇살이 강한 캘리포니아 해변에서는 밝은 머리색깔과 눈동자에 파스텔톤 옷이 예쁘다. 이상하게 칙칙한 유럽에선 이런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비슷한 머리색깔에 눈동자라도 약간 톤다운된 옷이 어울리는 건 햇빛때문일까?
나는 여행갈 때 가급적 잘 마르고, 잘 늘어나고, 얇은 옷을 골랐었다. 기능적이고 편의성이 보장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주를 여행할 때였다. 평소 멋쟁이이던 후배가 모자를 바꿔쓰고, 스카프를 하고, 원피스를 입는 게 좋아보였다. 옷이 기능과 편의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고, 더 나아가서 상황에 어울리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 다음부터 나도 여행을 할 땐 한국에서 하지 않던 짓을 한다. 우선 매니큐어, 패디큐어를 한다. 평소엔 거의안하는데 여행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다. 평소의 내가 아닌 존재가 조금씩 드러난다. 팔찌도 하고 한다. 스카프 모자는 옷처럼 부피가 크지 않아서 그때그때 기분을 내 주기에 좋아서 서너개씩 가져간다. 예측하지 못한 날씨에 대처하기에도 좋지만 새로운 기분을 내기에도 좋다.
평소 절대 안 입을 옷을 사기도 한다. 단지 예뻐서 혹은 언젠가 꼭 입고 싶이서. 팔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절대 입을 일 없다). 그런 옷을 여행에 가져가 입기도 한다. 크로아티아 여행에 이 원피스를 입었더니 같이 간 분이 자기도 한국에서는 한 번도 못 입어봤는데 이제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모자와 스카프로 하루하루 다른 나에 도전해 본다. 여행에서 우리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자아로 돌아다닌다. 이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내 안의 숨겨진 나를 풀어놓는 것. 엄마, 아내, 딸, 직장인 등 살면서 지고 있던 짐들을 지지 않고 나로 살아보는 것.
버리고 싶지만 못 버리는 옷도 캐리어에 넣는다. 낡았거나 뭔가 맘에 안드는데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자꾸 손이 가는 옷을 넣어가면 버리고 올 수 있다. 여행지에서 쇼핑한 걸 넣을 자리가 없을 때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근데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조금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같이 다니는 사람과 어울려줘야 할 것 아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하루는 동행의 옷차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가 봐도 짝퉁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조악한 무늬의 모자(차라리 아무 무늬가 없으면 나을 듯), 거기에 먼지가 많은 것 같다며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눈만 빠끔히 보이는데, 누가 보면 전염병자같이 보일 것 같았다. 그날 같이 다니며 정말 힘들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다른 아줌마가 쓴 여행기를 읽었는데, 여행 중 하루 정도는 드레스 코드를 정했다고 했다. 주황색을 넣는 것이다. 옷이나 신발, 악세사리나 어떤 것이라도 하나 정도는 주황색을 넣으면 여행의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혹은 화장 잘 하는 아줌마가 같이 다니기 창피히다고(물론 농담으로), 아침마다 다른 사람 화장을 고쳐준다는 것이다.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