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한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행 동행을 구하는 글이 올라온다. 혼자 가는 여행이 두렵기도 하고, 돈이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니까, 심심할 것 같아서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어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동행을 구해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온갖 종류의 어려움이 일어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혹은 여행 중에 아무리 규칙을 정하고, 논의를 해도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누군가와 친밀하게 그리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여행을 시작했지만 서로의 묵은 습관과 두려움과 요구와 제약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과 재미있게, 서로 돌보며, 충만한 여행을 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모르는 사람과의 여행은 쉽지 않다.
하지만 타인과의 여행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서로를 돕는 쪽을 택한다면 아는 사람과의 여행 혹은 혼자 하는 여행과는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외국을 여행하며 우리는 오히려 살던 곳을 떠올린다. 내가 살던 그곳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밀라노에서 충동적으로 일정을 변경하는 동행을 보며 그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단지 우리는 집 단안에서 서로 역할을 바꾼 것이다. 나는 다른 집단에서 그 동행처럼 충동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계획을 바꾸려고 하던 사람이 될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사랑과 관용의 축복을 가져오는 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집단에 갈등과 말썽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선물이 된다. 우리는 삶의 각본 속에서 주기적으로 바꿔가면서 양쪽의 역할을 다 맡게 된다.
타인과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한 수녀가 수녀원에서 두 명의 수녀만 빼고 다 좋아했다. 한 수녀는 게을렀고 다른 수녀는 자기도취적이었다. 하루는 부엌에서 다른 수녀에게 한 명은 게으르고 한 명은 늘 자기만 생각한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좀 더 게을러지고 좀 더 네 생각만 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그걸 유식한 말로는 투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게 나를 비추어 보는 것 이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인과의 여행에서 오는 것이다. 다른 영혼들과 함께 큰 목표를 향해 움직여가는 것, 그것은 하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