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나 부모가 공주와 나쁜 여자, 그리고 왕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무작정 못 보게 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러한 공주 이야기가 넘쳐나고, 공주 캐릭터 북과 잠옷, 인형, 인형 옷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나 공주 이야기에 대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 왕자가 처음 본 공주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처음 보고 예쁘다고 결혼해서 잘 살았을까?”, “ 인어공주가 왕자를 만나려고 목소리를 마녀에게 팔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렇게 공주 이야기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런 공주 이야기 외에 다른 공주 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 멋대로 공주, 종이봉지 공주, 긴 머리 공주 등은 여아들의 공주에 대한 선호를 충족시켜 주면서 올바른 여성상을 제시하므로 유아들에게 많이 들려줄 필요가 있다. 올바른 여성상과 남성상, 양성평등적인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모델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베빗 콜의 내 멋대로 공주는 공주와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내 멋대로 공주는 예쁘고 부자지만 결혼하기보다는 괴물들을 애완동물로 키우며 아가씨로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예쁘고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괴물들을 돌보기 위해 바지를 입고 험한 일을 한다. 공주는 예쁘고 치마만 입고 얌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 주된 목적이지도 않고 공룡들과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왕과 왕비는 나이가 꽉 찼으니 괴물들과 그만 노닥거리고 남편감을 찾으라고 한다. 예쁘고 부자인 공주와 결혼하려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모두 멋지게 차려 입은 왕자들이다.
공주는 수많은 왕자들 가운데 자기의 기준으로 남편감을 고른다. 공주가 왕자를 고르는 기준은 이를테면, 괴물 애완동물에게 먹이주기, 롤러스케이트 타고 마라톤 하기, 공주의 오토바이 함께 타고 크로스 컨츄리 하기, 유리로 된 공주의 탑에 올라오기, 움직이는 나무 숲 속에서 나무 베어 오기, 공주의 말 망아지 타기, 쇼핑광인 어마 마마의 짐 들기, 상어 같은 정원 물고기 입에서 반지 찾기 등등이다.
겁쟁이 왕자들은 모두 실패하고 한 왕자가 등장하여 공주가 낸 숙제를 슬기롭게 모두 통과한다. 그래서 공주는 왕자가 맘에 들어 이 왕자에게 키스를 하는데, 키스하는 순간 왕자는 개구리로 변한다. 이 얼마나 통쾌한 반전인가! 대부분의 공주는 키스의 대상이 되고, 키스를 받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는데, 내 멋대로 공주에서는 왕자가 키스의 대상이 되고, 왕자에게 키스하는 순간 왕자가 개구리로 변해서 공주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이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양의 동화에서 개구리는 서민 남성을 의미한다. 사실 여성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상대가 왕자인 줄 알고 결혼하지만, 결혼한 후에는 배우자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누추하였는지, 왕자인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 보통의 한 남자에 불과한지 알게 된다. 그러면 개구리가 공주의 키스로 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왕자가 공주의 키스로 개구리가 되는 것이 올바른 은유가 아닐까.
결국 개구리 왕자는 떠나고 공주는 결혼하지 않고 괴물 친구들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내용이다. 단지 내 멋대로 공주를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결혼에 대한, 왕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환상이 깨지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또 하나의 공주 이야기는 긴 머리 공주이다. 긴 머리 공주는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표지를 보면 암울한 느낌조차 들 정도이다. 빨간 바탕의 책 표지에 머리 다발로 이루어진 동심원 가운데 공주가 앉아 있다. 동심원 중앙에 앉은 공주가 안쓰럽기도 하고, 공주의 긴 머리가 징그럽기도 하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가난한 나라에 공주가 태어났다. 공주면 대부분 부자인데 이 공주는 가난한 나라의 공주다. 공주의 아버지인 왕은 공주의 머리가 길면 길수록 좋다고 하며 공주의 머리를 못 자르게 한다. 공주의 머리는 한없이 자라서 머리를 감으려면 수영장에 누워 9명의 하녀가 감겨야 하고, 어디를 가려고 해도 6명의 신하가 머리를 들어줘야 했다. 급기야는 긴 머리를 둘로 나누어 두 개의 트렁크에 넣고 들고 다녀야 했다. 하인이 없을 땐. 공주가 직접 끙끙대며 화장실까지 두 개의 트렁크를 날라야 했다.
공주의 긴 머리를 들고 다니게 하기 위해 서커스의 힘센 남자를 고용했고, 공주는 서커스의 힘센 남자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임금님은 공주의 큰 가방 안에는 보물이 있다고 소문을 내어, 세상의 많은 왕자들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보석이 박힌 황금 빗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드디어 왕자들이 가지고 온 빗을 보고 ‘이만하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부자’라고 하고 서커스 남자와 길을 떠난다. 추운 밤이면 긴 머리를 이불 삼아 덮고 자면서, 둘은 서커스단에 가 공주의 머리를 자르고, 서커스를 하며 하늘을 날게 된다.
긴 머리 공주에서도 결혼은 주된 주제이다. 그러나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서커스단 남자와 결혼하여 서커스를 하며 하늘을 날게 되었다는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여성을 둘러싼 굴레나 결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견 공주는 왜 혼자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고 서커스단의 남자가 자르도록 했을까? 서커스단의 남자는 꼭 힘이 세어야만 하나?(마지막 장에도 서커스단 남자는 말을 어깨에 이고 힘자랑을 하고 있다)와 같은 의문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머리 공주가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는 자유이다.
아버지의 명령으로부터의 자유,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정해진 운명(공주는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으로부터의 자유, 서커스단 남자가 전하는 세상의 자유, 서커스 단에서 하늘을 날며 느끼는 자유. 여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에 대해서 느끼거나 생각해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소임을 다 한 것이다. 부모나 교사들은 긴 머리 공주의 불편함과 자유에 대해서 유아들과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새로운 공주 이야기의 마지막은 종이봉지 공주이다. 로버트 먼치의 종이봉지 공주는 잘 알려져 있고, 비디오로도 나와있다. 비디오의 내용은 책의 내용보다 더 재미있고 구체적이어서 책을 본 후에는 비디오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종이봉지 공주의 이야기는 이렇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원래 옷 입는 걸 좋아하고, 로널드 왕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서운 용이 나타나 공주가 사는 성을 부수고, 공주의 옷을 태워버린 후 왕자를 잡아갔다. 보통의 왕자와 공주 이야기에서는 공주를 잡아가고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러 나서는데 종이봉지 공주에서는 용이 왕자를 잡아가는 것이 재미있다.
공주의 옷은 다 타버려서 근처에 남아있던 종이봉지에 구멍을 내 뒤집어쓰고 왕자를 찾으러 나선다. 용이 지나간 길은 모두 타버리고 말뼈들만 뒹굴고 있어서 길 찾기도 아주 쉽다. 드디어 용을 만난 공주는 용의 자만심을 부추겨 실컷 날아다니게도 하고, 입에서 불을 뿜게도 해서 용을 기진맥진하게 한 후, 왕자를 구해낸다.
공주에게 구출된 왕자는 공주가 옷을 제대로 차려입지 않았다고 투덜댄다. 이런 왕자에게 종이봉지 공주는 ‘그래 로널드,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라고 말한다. 종이봉지 공주의 마지막 장면은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뛰어가는 공주의 모습이다. 이러한 뒷모습은 결혼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 열린 세상을 향한 출발,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릴 수 있음을 다소 웅변적으로 말해준다(최윤정, 2000).
긴 머리 공주, 내 멋대로 공주, 종이봉지 공주와 같은 새로운 공주 이야기는 예쁘고 착한, 의존적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대어있지도 않으며, 결혼에서도 자유롭다. 교사나 부모들은 유아에게 기존의 공주 이야기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도록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주 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