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장에 갔습니다. 가기 전에 배낭을 매십니다.
"여기다 담아 올거야."
신정을 앞두고 떡만두국이라도 끓이자 싶어 고기간에 갑니다.
양념한 돼지 갈비, 만두에 넣을 고기 간 것, 국물내기 귀찮아 산 곰국
을 사니 제법 무겁습니다. 다행히 차를 장에 붙어 있는 우체국에 주차헤서
거기까지 내가 들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울엄마
무조건 이 배낭에 넣으랍니다. 등을 나한테 들이밀고 발을 동동 구릅니다.
"엄마, 사람들이 욕해."
아니라며 아니라며 여기다 넣으라며 장 한가운데서 발을 동둥 굴러댑니다.
결국 못 이기고 넣어 드렸습니다.
아이 어렸을 때,
나는 항상 선택해야 했습니다.
내가 창피할 것이냐 아이가 창피할 것이냐.
제대로 못끼운 단추, 신발, 옷 하지만 아이 스스로 한것.
아이가 할 때를 못 기다려주고 못 참아주고 내가 단정하게 한 것
나는 내가 창피한걸 선택했고 아이는 자랑스럽게 길을 나섰으나 나는 이 아이 엄마가 아닌 것처럼
걸어갔습니다. 창피해서..
울엄마랑은
내 체면이나 엄마의(사실은 엄마 안에 있는 내면 아이의) 욕구냐 사이에서
아이때보다 훨씬 더 많이 갈등합니다.
어떨때는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으나,
이제는 압니다.
내가 엄마 안에 있는 아기를 보살필 때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