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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Hood Jun 16. 2021

사람은 계속, 많이, 변한다

그리고 만나지 않으면, 영원히 멈춰있을 거야

입사 1년 차 연말,

세상에서 정-말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의 사수였던 그. 그는 일을 잘했다.


2살 어리고 1년 늦게 들어온 회사 후배가 생긴 그는

일도 잘하고, 가르치기도 잘하는 '선배'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는 나의 모든 일을 시시각각 점검했고, 지적했고,

지적해야 하는 상황들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짜증을 나에게 전가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완벽하며 잘 해내는지 - 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짜증에 반응하지 않았던 나는 그에게 서운한 대상이었고,

감정을 쏟아내는 그는 나에게 마주치기 싫은 대상이었다.


일하는 사이에서 싫어진 사이가 된 채로,

그는 퇴사했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끝났다.



끝난 사이로부터 5년이 지나, 그를 다시 마주했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악당이었고, 그에게 나 역시 악당이었을 터다.


선뜻 밥을 먹자며 약속을 잡은 그는 여전하지 않았고,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열 번도 넘게 사과하며

그 때 얼마나 스스로를 부풀리고 싶어했는지,

그 때 얼마나 잘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말했다.


나도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서툴렀는지,

얼마나 사람을 미워할 수 있었는지,

얼마나 나의 힘든 이유를 타인에게 전가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먼저 말하지 못했다.


그는 쉬운 듯, 당연한 듯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꺼내놓았고

그가 멋졌고, 또 그가 여전할 것이라 확신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신기하면서도 고마운 대화가 끝나고,

그는 일하는 사수나 선배가 아니라 '언니'로

과거의 악당이 아닌, 살아있는 관계로 다시금 움직이고 있다.



그는 고집이 있던 사람이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런 자신을 멋지다고 인식하던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집은 그의 성장을, 과거의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눈을, 사과할 줄 아는 성숙함을,

나의 시각에서는 '변화한 사람'을 만들어 냈다.


알지 못하는 찰나의 사이에도, 사람은 변한다.

가장 기저에 깔려있는 기질은 변하지 아니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며, 말과 행동이 변화한다.


하지만 상대가 변화했더라도, 만나지 않으면 - 만나서 목도하지 않으면 -

상대는 내게 영원한 단편으로 남는다.

그가 내게 악당으로만 남을 듯했던 시간처럼.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풀어야만 '해결'이 된 것 같았는데,

때로는 만나지 않고 '변화'를 기다려야만 전환이 되는 사이도 있는 것 같다.


의외의 반전과 성숙함으로 가르침을 준, 이제는 진짜 '선배'라고 하고 싶은 그가

오늘도 긍정적인 영향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날이면 좋겠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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