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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Feb 13. 2023

실크로드 여행이 남긴 선물

경계의 벽이 아닌 교류의 길을 꿈꾸며 

 

여행은 ‘경계넘기’다. 경계를 넘는 순간, 새로운 나를 마주한다. 기존의 고정된 사고 틀에서 벗어나면 그 곳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가 서 있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고정된 관점의 틀을 깨고 인식의 전환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나는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갇혀진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그리하여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무언가에 ‘왜’를 물을 수 있기를, 늘 옳다고 생각했던 무언가에 ‘아니다’를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 순간이 닫혀진 마음이 기적처럼 열리는, 관용과 포용의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화공존이란 이렇게 열린 마음이 가득한 시민들이 만드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나의 여행은 언제나 ‘악의 축’,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라는 고정된 관점으로 매몰된 국가들로 향한다. 그 고정관념을 깨려는 의지 속에 ‘평화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여행을 ‘그랜드 피스투어’라고 명명한다. 스스로 갇혀진 관점을 깨려는 ‘의지’를 낸 사람들이 많은 나라, 그 국가에는 희망이 있다. 열린 마음과 관용성은 위대한 국력을 만드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배낭을 메고, 미지의 나라, 미디어가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진 ‘최악, 미개, 가난, 전쟁, 악의 축’으로 떠나보면 언제나 나는 그 곳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만났다. ‘발전, 선진, 첨단’이라는 문명국을 걸으면서는 ‘행복, 자유, 공존’의 가치를 다시 묻고 찾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유일한 답, 단 하나의 고정된 관점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려는 노력이다. 


대학에서 나는 방학이면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서유럽이나 남유럽, 미주를 여행지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중앙아시아’는 낯선 땅이다.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한반도에서 훨씬 더 가까운 땅인데도 심리적 거리는 멀다. 유럽지도만큼 국가별 위치를 정확히 찾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지역은 실크로드를 통해 천년의 역사를 이어가며 동서양 문명교류의 한 획을 그은 거대한 문명이다. ‘중앙아시아’는 예로부터 동서를 잇는 교역로로 끊임없는 물건, 사상, 사람의 이동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는 선진 문화를 수용하고, 동서에 각각의 문화를 전파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세계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중앙아시아가 잊혀진 것은 ‘유럽 주연, 중국 조연의 세계사’ 프레임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의 역사가 서구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산다. 또 우리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서 중국이 가지는 위상과 힘 때문에 우리는 중국적 사관에서 중앙아시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중국사는 정주민과 유목민의 이분법적 구분에 기인한 역사인식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중앙아시아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오랑캐 문명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은 어떤 교류도 없이 서로 독자적으로 자생한 문명이 아니며, 유목민과 농경민 역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왔다. 동양과 서양, 유목민과 농경민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각각을 하나의 수레 바퀴로만 생각하는 한, 우리는 절대 입체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마차, 즉 통사적 관점의 세계사를 볼 수 없다. 개별 부품으로서의 수레바퀴인 동과 서, 유목민과 농경민을 연결시키는 접합체가 바로 ‘중앙아시아’인 것이다.


중앙아시아라는 명칭과 이 지역이 우리에게 너무도 낯선 것은 여전히 우리가 19세기 서구중심적 관점의 세계관과 20세기 1,2차 세계대전이후 만들어진 냉전적 사고의 틀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냉전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분단 한반도’라는 지리적 관점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떠나보자. 그곳에 가면 ‘야만과 미개’의 오랑캐 문명이 얼마나 ‘만들어진 허구’인지를 실감한다. 그곳에 가면 위대한 ‘로마’문명에 못지않은 찬란한 실크로드의 황금문명에 감탄한다. 그곳에 가면 ‘이슬람권 국가’가 얼마나 유럽보다 안전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이요, 소매치기나 사기도 없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정성껏 손님을 접대하고 마음으로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가면 청정공기가 무엇인지를 실감하며 숨쉬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된다. 떠나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다. 그 수많은 ‘편견’을 걷어내고, 한반도를 넘어 거대한 대륙, 유라시아 땅으로 떠나는 순간 우리는 ‘위대한 실크로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이 ‘위대한 실크로드’ 위의 땅, 중앙아시아에 맞춰져야할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 지역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이 글에서 다루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3국은 소련 통치하에서의 정치상황과 1991년 독립이후의 정치상황이 많이 다르다. 또한 이 지역은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을 받은 이후, 이슬람과 몽골, 티무르제국으로 이어지는 시절을 겪었다. 동시에 이곳은 현재 풍부한 자원으로 러시아, 중국, 미국이 경쟁하는 각축장이기도 하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이 지역 국가들의 뉴 실크로드계획은 21세기 우리의 미래와도 직결되어 있다. 


실크로드는 경계의 벽이 아닌 교류의 길이다. 그것은 동과 서, 문명의 야만의 구별을 벗어난 연결의 통로이다. 나는 2019년 4월부터 두 달간 실크로드가 거쳐간 국가를 여행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시작으로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과거 실크로드를 가로지른 이 지역을 통칭해서 ‘중앙유라시아’라고 한다. 글에서는 ‘중앙아시아 3국’만을 다뤘지만 중앙아시아도 결국은 ‘중앙 유라시아’라는 개념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유럽(서)과 아시아(동)을 분리하는 것은 비뚤어진 이념적 환상(ideological illusion)의 무의미한 행동이다.” 
-『The Huns, Rome and the Birth of Europe(2013)』”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중앙유라시아’는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중앙유라시아’라는 용어만으로는 정확히 어느 지역을 지칭하는지 그 개념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겐 중앙아시아, 중동,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 개념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명칭은 모두 근대 이후, 서구에서 바라본 위치에 따라 지정된 지리적 개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극동’ 또는 ‘동북’아시아가 된 것은 모두 서쪽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끝이 되고, 동북쪽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지역을 근대 이후 서구적 관점에서 구별한 ‘지리적 명칭’으로만 이해하면 거대한 인류의 문명교류의 역사가 축소되어 통사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라는 국경이 열린 네트워크 시대를 살면서 19세기 근대 서구가 만든 지리적 명칭에 갇히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중앙유라시아’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시아의 위치에서 이 지역을 문명사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개념이다. 


중앙 유라시아는 중앙아시아 5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크르메니스탄을 포함하여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3국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그리고 과거 페르시아 문명의 이란지역 통칭하는 광대한 영역을 말한다. 원래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라는 용어는 1960년대 헝가리계 알타이학 연구자 데이스 사이노어(Denis Sinor)가 처음 사용한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용어는 그때까지 사용되던 내륙 아시아(Inner Asia) 또는 중앙아시아(Central Asia)라는 용어가 가리키는 영역보다 훨씬 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부분(우랄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동서로는 동유럽에서 동북아시아까지 이르고, 남북으로는 북극해에서 카프카스 산맥,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 고원, 쿤룬 산맥, 황허에 이르는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앙유라시아는 그 용어를 처음 쓴 사이노어가 지적하듯 지리적인 용어라기 보다 문화적 개념이다. 이 광대한 지역은 근대의 서구의 지리적 명칭으로 나누기 이전, 아리아인의 이주와 페르시아 문명권이라는 공통적 문화기둥, 그리고 이슬람제국과 몽골, 티무르 제국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의 역사안에서 상호 영향을 받으며 세계사의 중심이 된 지역이다. 세계를 근대 서구 중심의 지리적 관점이 아니라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시 조망하는 것은 냉전 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편되고 있는 이 시대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중앙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이 위대한 실크로드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문명 교류사적 시각으로 본 세계사 속의 중앙 유라시아


첫째, 문명 우월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중앙유라시아가 관통하는 문명 교류사적 시각에서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유럽 주연, 중국 조연의 세계사’를 배웠다. 유럽 주연의 역사는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사이며, 중국 조연의 역사는 정주민과 유목민의 이분법적 구분에 기인한 역사인식이다. 그러나 어떤 단일문명도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형성된 것은 없다.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서구의 기독교 사상이 탄생하고 기독교 사상에서 계몽주의가 탄생하고 계몽주의에서 근대시민사회가 시작되었다는 단선적 논리는 서구문명사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기독교 사상 중심의 중세를 무너뜨린 계몽주의가 기독교 사상에서 나왔다면 과거의 기독교사상과 다른 사고를 가능하게한 외부의 어떤 영향이나 새로운 사상적 바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사상이라는 견고한 틀을 가졌던 천년의 중세를 무너뜨린 그 혁신성과 창조성은 어디서왔는가? 중화 문명으로 대표되는 한(漢)나라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오랑캐들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물리침으로써 독자적으로 찬란한 문명을 유지한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속에 있다.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이란을 중심으로 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로마와 끊임없는 경쟁 및 협력관계를 가졌다. 현재의 내, 외몽골 지역을 무대로 흉노는 한(漢) 나라와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화친과 전쟁을 반복했다. 흉노의 후예인 훈족은 게르만족의 이동을 촉발시켜 유럽을 새로운 사회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몽골은 변방에서 일어나 주변의 문명세계를 유린하고 동서를 하나로 통합하여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는 특정한 경계를 초월하여 어떤 움직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뒤섞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복합역사이며 동서양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중앙유라시아는 예로부터 동서를 잇는 교역로로 끊임없는 물자의 이동이 있던 지역이다. 물자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문화와 사람의 이동을 수반하며, 이 과정에서 물자 중개를 담당한 이 지역 오아시스 정주민은 동과 서의 신문화를 가장 빠르게 접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중국인에 앞서 서방에서 발생한 종교를 받아들이고 서아시아와 유럽인에 앞서 중국의 제지 기술을 체득한다. 


선진 문화의 수용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화창조로 이어졌으며 특히 중개무역을 통해 모은 경제력은 오아시스민들이 동서양의 외래 문화를 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 간다라미술과 이슬람문명은 모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밑거름이 되었고 이들은 이렇게 동서 두 세계에서 흡수한 이질문화와 스스로 창초한 혼합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몽골제국은 정주문명의 혁신세력으로 기동력과 군사력을 가진 유목민과 동서 문화교류의 전파자 또는 혼합된 신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오아시스 정주민이 가진 경제력과 문화력이 동서문명의 접합지점에서 가장 성대하게 통합되어 꽃피운 제국이었다. 몽골제국은 동서문명을 하나로 통합하고 정주민과 유목민을 연결시키면서 이 거대한 제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에 ‘이동의 안전성’을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인쇄술, 화약, 나침반등이 서양으로 전해지면서 중세를 떠받치던 봉건제도와 기독교문명에 새로운 균열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년의 중세를 무너뜨린 그 혁신성과 창조성은 원천은 바로 중앙유라시아의 몽골제국이었던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을 야만인, 오랑캐의 나라로 규정하며 만리장성 이남의 문명화된 정주민의 역사만을 바라본 것은 중화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한 편협한 관점이다. 중국 최초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은나라와 주나라의 문명은 유목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수나라와 당 제국의 출현도 5호16국 시대라는 유목 세계와 정주세계가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밖에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를 비롯한 몽골 고원에서 활동한 유목민 집단은 중국과 주변 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상호 발전해왔다. 


그러므로, 중앙유라시아를 이해하는 것은 서구 중심의 사관에서 탈피하여, 유럽주연의 역사를 ‘동서 문명교류사의 주인공’을 공동주연으로 하는 역사로 바꾸는 작업이다. 동시에 문명국 중국만이 중심이 되었던 정주민 중심의 역사에서, 주변국-오랑캐국이 함께 교류한 유목민의 역사를 끌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은 어떤 교류도 없이 서로 독자적으로 자생한 문명이 아니며, 유목민과 농경민 역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왔다. 동양과 서양, 유목민과 농경민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각각을 하나의 수레 바퀴로만 생각하는 한, 우리는 절대 입체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마차, 즉 통사적 관점의 세계사를 볼 수 없다. 개별 부품으로서의 수레바퀴인 동과 서, 유목민과 농경민을 연결시키는 접합체가 바로 ‘중앙 유라시아’인 것이다.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의 원형으로의 중앙 유라시아


둘째, 실크로드 여행을 통해 우리는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교류가 무한히 확산되는 21세기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공간과 시간을 뛰어 넘어 무한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망을 가진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간다. 일방통행만이 가능한 단선적이고 단일한 루트안에서는 그 길 잇고 있는 두 개의 점, 즉 시작점과 끝점 그 지역만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점이 곧 중심이 되며, 그 중심점을 잇는 길 밖의 지역은 모두 변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힘을 가진 국가를 중심으로 국경의 경계가 나뉘고 인식의 범위가 제한되었던 시대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망으로 연결된 복잡 네트워크 안에서는 모든 지점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 무의미해진다.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점과 점을 연결하는 수많은 경로들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것이 네트워크 시대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네트워크 시대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길’이 바로 기원전부터 형성된 ‘실크로드’이다.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중국 서안에서 로마로 연결한 하나의 단일 경로의 길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중심의 역사안에서만 ‘실크로드’를 이해한 편협한 관점이다. 실크로드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하나로 그어진 단선도로가 아니다. 실크로드는 동서를 관통하는 3개의 간선과 남북을 관통하는 5개의 지선을 포괄한 세계의 거대한 네트워크였다. 동서를 연결하는 3개의 주요 간선은 초원로, 오아시스로, 해양로로 나누어지며, 여기에 다시 남북을 연결하는 5개의 지선이 교역물품에 따라 마역로, 라마로, 발타로, 메소포타미아로, 호박로로 세분화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초원을 횡단하는 초원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관통하여 로마까지 이르는 오아시스로, 중국 항저우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바그다드 또는 로마로 이르는 해양로를 일컬어 동서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3대 간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닷길을 제외한 모든 육상길은 중앙유라시아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남북을 관통하는 5개의 지선은 어떠한가. 몽골 카라코름에서 장안과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마역로, 중국 고창 투루판에서 티베트 라싸, 북인도 시킴까지 내려가는 라마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에서 아프카니스탄을 지나 중인도까지 이어지는 붓다로, 코카서스 북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와 이란 타브리즈,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메소포타미아로,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과 에페수스까지 이어지는 호박로- 이렇게 남북을 연결하는 다섯개의 지선 역시 모두 중앙유라시아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의 원형을 간직한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앙유라시아를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문명권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실크로드의 길 위에서 동서교역의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와 이란은 여행 가이드북조차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내 글을 통해 당신이 19세기 서구중심의 세계관과 20세기 냉전적 사고의 틀을 벗어났다고 말해준다면, 분단된 한반도라는 지리적 관점을 떠나 위대한 실크로드의 길 위에 서 있을 용기를 냈다고 말해준다면 저자로써 더할나위 영광이자 크나큰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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