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시간으로 말한다는 것에 대하여
사랑을 말할 때
사람들은 시간을 먼저 꺼낸다.
영원히, 끝까지, 언제나.
마치 시간이 충분하기만 하면
사랑도 스스로를 증명해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그 말들은
입술 위에서는 단단해 보여도
시간을 건너는 동안 쉽게 닳는다.
너무 많은 입을 거치며
가볍게 약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말들은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흝어져버린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너를 사랑할까.”
드라마 속 경도의 질문은
그래서 더 낯설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한 사람이 사랑 앞에서
걸음을 늦추는 소리처럼 들린다.
너를 향해 던진 말이 아니라,
사랑을 말하려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
사랑은 종종 형태를 바꾼다.
기대는 책임으로,
설렘은 습관으로 옮겨간다.
그 변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나는 이 감정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변한 사랑까지 끌어안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너무 쉽게 약속해버린다.
반면 '얼마나 오랫동안'이라는 질문에는
이미 망설임이 있다.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변화를 삭제하지 않은 채
말하겠다는 선택.
그래서 이 문장은
사랑의 크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나는 이 시간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사랑이 끝난 뒤에도
이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사랑했던 나 자신을
지우지 않을 수 있을까.
끝을 모르는 사람은
쉽게 영원을 말한다.
그러나 끝을 상상해본 사람만이
시간을 묻는다.
그 시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그래서 '얼마나 오랫동안'이라는 질문은
사랑의 기간을 재는 말이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말에 가깝다.
사랑이 익숙해질 때에도
말을 서두르지 않는 일,
관계가 흔들릴 때에도
그 시간을 가볍게 부르지 않는 태도,
사랑이 끝난 뒤에도
그때의 마음을
함부로 지우지 않겠다는 선택.
어쩌면 사랑은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가보다
그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내가 나를
어떤 얼굴로 마주할 수 있는지로
비로소 기억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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