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서
며칠 동안
하루를 쓰지 못했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무거워지고,
목소리가 말보다 먼저 사라지는 동안
시간은 생각이 아니라
통증의 길로 흘러갔다.
오늘은 몸이 조용하다.
기침이 나를 부르지 않고,
머리가 당기지 않으며,
숨은 자기 속도로 드나든다.
오랜만에
몸을 의식하지 않고
아침을 맞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생각보다 길다.
고통도 없고,
사고도 없었고,
이별도 없었고,
되돌릴 수 없는 선택도 없었다는 것.
무료할 만큼 평온한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해치지 않은 채
하루를 건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 생긴 날에 의미를 부여해
하루를 완성하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흘러간 스물네 시간 또한
무너지지 않은 세계의 한 형식이다.
오늘 아침의 빛은
아무 예고도 없이 방 안에 내려앉았고,
물은 자기 몫의 온도에 닿은 뒤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밤은 질문하지 않는 얼굴로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
시간은
길을 묻지 않고 흘렀고,
빛은 하루를 끝까지 데리고 갔다.
그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는
설명할 필요 없이
그대로 균형이었다.
삶이 나를 흔들지 않았고,
나 또한 삶을 해치지 않은 날.
그저 숨 쉬고,
밥을 먹고,
밤이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은 하루.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는
어쩌면 많은 것이 조용히 살아남고,
아주 많은 것이 무사히 지나간
오늘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비로소
진짜 하루가 있다.
글 / 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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