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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Dec 20. 2017

보이지 않는 진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1. “내가 도와줄게”에 담겨있던 오만


나는 나 자신을 깨어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많이 했었고 나중에 결혼하게 되어서도 집안일을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괜찮은 남자이지 않을까’하는 굉장한 오만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집안일을 도와준다”라는 표현 자체에 이미 ‘집안일은 여자 고유의 몫’이라는 성차별적인 관념이 깔려 있다는 글을 읽었을 때, 망치로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근거가 성차별적인 관념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난 전혀 깨어있지 않았고, 내가 욕했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문제의식을 못 느낄 정도로 갇혀 있던 나를 반성하고 그동안 한국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과 피해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책을 펴기 두렵기도 했다. 이 책에 내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하고 행했을 또 다른 수많은 잘못된 행동과 표현, 그리고 사고들이 그대로 담겨 있지 않을까, 그동안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나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2.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직, 간접적으로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소설은 김지영씨가 82년에 태어나서 유년,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주부생활을 하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된다. 그리고 각 시기마다 그녀가 여자이기에 받아온 성차별들,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모욕들이 담긴 에피소드가 서술되고 있다.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피해의식의 과잉 혹은 과장 아니냐며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후자는 핀트를 잘못 잡은 듯하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한 여자가 이 모든 차별들을 겪었다는 것이 아니다(물론 이와 같은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차별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도 명백히 존재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김지영씨가 결국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실제로 이 모든 경험을 한 사람이 겪게 되면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던 이유는 모든 에피소드를 그들이 전부 겪었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 혹은 그 주변의 여성이 그중 최소 ‘하나’ 이상의 에피소드는 직, 간접적으로 겪어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최소 한 번쯤은 성차별을 겪는다는 사실. 한국사회는 이렇게 명백히 여성이 차별받는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3. 보이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주변에는 이렇게 성차별을 하는 남자도, 성차별을 받은 여자도 없다며 소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수많은 통계자료와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 성차별에 관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수 없다는 것 또한 한국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수 없이 김지영씨가 분노를 삼키며 참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사회에서 디디고 있는 그 좁은 설 자리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선배의 모욕을 참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직장에서의 성희롱을 참지 않으면 실업자로, 육아와 가사에 대해 힘든 티를 낸다면 모성애가 없는 주부로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목소리는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남성우월주의적 사고에 갇혀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충분히 성차별 문제의 여지가 될 소지가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본 것 같다. 최근에도 각 대학교의 대나무 숲(익명 SNS 커뮤니티)을 통해 또래의 피해자 여성들의 성추행 & 성차별 등에 관한 제보가 잇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음지에서 많은 피해를 당하고 혼자 감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보이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며, 나처럼 보는 눈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4.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도 많은 화제가 되었다. 김지영씨의 정신과 상담의가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면서 그 또한 한국 여성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한다. 하지만 그 직후, 위와 같이 결국엔 육아 문제를 안고 있는 기혼 여직원 채용을 기피하고 미혼의 여직원을 알아보겠다는 독백을 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아직까지 여성들의 권리들이 마땅히 존중받기에는 의식과 제도 등 모든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나타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더불어 상담의의 마지막 독백처럼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육아 문제를 ‘기혼 여성, 미혼 여성의 문제’, 즉 ‘여성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육아 문제는 남녀 모두의 몫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부터 눈치 보며 육아 휴직을 쓰고 있는 상황이며, 남성이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은 정말 흔치 않다. 남성 또한 여성과 동등하게 육아를 책임져야 하고, 그에 맞게 육아 휴직(동일한 기간의) 등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도 이를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김지영씨의 상담의가 ‘기혼 여성의 육아 휴직’ 혹은 ‘육아로 인한 퇴사’ 등을 골치 아픈 일이 아닌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데, 역시나 갈 길이 멀다.



5. 우린 흑과 백처럼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다.


요즘 ‘여혐’과 ‘남혐’이라는 단어가 유행일 정도로 남녀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물론 침묵보단 갈등이 있어야 출발점이 되어 서로간의 의견차를 확인하고 그 간극을 좁히며 함께 문제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서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상대의 패배가 본인들의 절대적인 승리인양 죽일 듯 헐뜯는데, 우린 흑과 백처럼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차별하고 있는 여성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딸이며, 우리가 차별하고 있는 남성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다. 즉, 나의 승리는 내 어머니의 패배이고 내 딸의 패배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없었으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양성평등이란 말 그대로 상호 존중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성평등에 다가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어서도 상호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자극적이고 의미 없는 감정적 소모전에 힘을 쏟기보단 사회 곳곳의 성차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서로 존중하며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잘못은 반성하고 문제점은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나부터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한다. 양성평등운동을 나타내는 단어가 이퀄리즘(Equalism)이나 휴머니즘(Humanism)이 아니라 ‘Female, 여성’에서 비롯된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것부터 책임감을 느낀다.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켜 양성평등을 실현한다는 슬로건 안에 이미 여성의 권리는 남성의 것보다 낮았고 긴 역사 동안 차별당하고 억압받았다는 맥락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만하고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고 내 행동, 내 생각 하나하나, 전체를 검열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부디 이 세상 모든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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