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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Dec 20. 2017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바깥은 여름'을 읽고

바깥은 여름 - 김애란


1. 상실의 이야기들


상실에 관한 7가지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그중 각각 첫 번째, 두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입동’과 ‘노찬성과 에반’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두 작품이 너무나 먹먹하고 절절해서 뒤에 수록된 다섯 작품은 개인적으로 감흥을 덜했다. (두 작품의 내용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직선적인 이야기들을 담았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하지만 각각 다른 종류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그에 파생된 깊고도 복잡한 감정들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책을 보는 내내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들이 나에게도 밀려오는 것 같았고, 내 마음을 가다듬느라 몇 번을 멈추기를 반복하며 아주 느린 호흡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2.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영화평론가인 이동진씨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서술한 적 있다.


“말이라는 것은 자꾸 쓰다 보면, 특히 좋은 말일수록 먼지가 내려앉게 되어 있어요. 내가 정말 곡진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말은 워낙 감정적으로 강력하고도 유용한 말하기 때문에 상업적 이유를 포함해서 지나치게 과용되고 있죠. 그런데 문학은 오랜 세월 말에 쌓여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을 털어서 그 말의 고유한 의미나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나니 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상실을 접할 수 있다. TV나 인터넷 포탈에서 보도되는 안타까운 상실의 기사들, 주변인들의 부고, 연인과의 헤어짐 등 우리 일상 곳곳에 상실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이상, 그 이야기들은, 말과 감정들은 무뎌진 채로 혹은 무감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애란 작가는 이렇게 얼어붙은 우리들의 감성을 산산조각 내고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다. 상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있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지나쳤던 수많은 감정들을 쉴 새 없이 풀어내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섬세하고 여운이 길게 남아 몇 번을 곱씹게 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까지 표현해 낼 수 있나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각각 감상의 정도와 후기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김애란 작가가 ‘말’들에 쌓여 있던 먼지들을 깨끗이 털어내고 온전히 그 고유의 의미와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여 깊은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이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붙들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 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 입동 中 - 


찬성이 용기 내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흰 개가 찬성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찬성의 몸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찬성의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대다 혀를 내밀어 얼음을 핥았다.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뭔가가 찬성을 훑고 지나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찬성이 두 눈을 깜빡였다. (중략) 찬성이 자기 손바닥을 가만 내려다봤다. 얼음은 사라지고 손에 엷은 물자국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찬성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찬성은 그게 뭔지 몰랐다.

‘노찬성과 에반’ 中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알고 있니?’

에반의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들거렸다. 찬성이 에반의 입매, 수염, 콧방울, 눈썹 하나하나를 공들여 바라봤다. 그러자 그 위로 살아, 무척, 버티는, 고통 같은 말들이 어지럽게 포개졌다.

‘있잖아, 에반. 나는 늘 궁금했어.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

‘에반 많이 아프니?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나중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에반이 끙 소리를 냈다. 찬성은 몸을 돌려 바로 누운 뒤 어둠 속 빈 벽을 한참 바라봤다.

‘노찬성과 에반’ 中 



3. 타인의 상실의 아픔에 대처하는 자세


자식을 잃은 슬픔,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 소설 속 상실의 이야기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버겁고 먹먹한데 과연 우리는 타인의 상실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섣부른 위로가 상대 마음에 더 상처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괴로워하는 상대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일까 하며 항상 갈피를 못 잡았던 것 같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라고들 하는데, 글쎄.. 참 어려운 일 같다. 


반대로 믿기 싫지만 타인의 상실과 아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전히 견뎌내기도, 매 순간 목이 메어 숨쉬기도 힘든 사람들을 체스판 말 휘두르듯 본인들의 목적을 위해 왜곡하고 이용하는 사람들.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지, 왜 그들은 스스로 같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인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너무나 화가 나고 안타깝기만 하다. 


사는 것이 바빠, 일에 매몰되어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현대인들, 현재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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