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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Jan 14. 2018

인간은 한 번밖에 못 살기 때문에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고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 오즈 야스지로


나는 VIP다. 현대백화점, 힐튼 호텔, 루이뷔통의 VIP… 는 아니고 CGV의 VIP이다. 내년이면 VVIP가 된다. (이상한 건 3년이 넘도록 VIP시사회에 꾸준히 응모했는데 한 번도 당첨되어 초청받은 적이 없다. 말만 VIP지, 등급 놀이에 놀아난 호구에 불과하다) 그냥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지는 5년 좀 넘은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에 대해 막 잘 알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한 영화를 찾아보는데, 당최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좌절하고, 인터넷에서 각종 해석을 뒤져보고 나서야 조금 이해하는 척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이다.


내가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잡생각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기분이 환기된다는 점. 두 번째는 주인공들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2시간 안팎 동안 다양한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송인근’ 들을 경험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현실에 감사하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고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여러 내용 중에서도 영화에 대한 감독의 가치관이 드러난 부분이 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는 무대극에서 떨어져 나와 ‘영화’라는 독립적인 장르가 탄생한 것은 결국 ‘사실’에 대한 추구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사실 묘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의 재구성이며, 보다 완전한, 그리고 보다 납득 가능한 인생의 모습을 전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영화란 극도로 ‘사실’적인 기법을 활용해 관람객들에게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법한 '누군가의 인생을 정제해서 보여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는 결국 도구이고, 이 모든 것은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는 우리가 이야기(정확히는 ‘문학’)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이 한 번밖에 못 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천 번 만 번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시연 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딱 한 번 시행하는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타인이라면 다양한 상황과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주고 감정을 이입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 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완벽하게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겠어요. 인생에는 변수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소설은 그런 변수들을 통제하고 정리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관계에 대한 문제인지, 인간이 고독을 즐길 수 없는 무능력에 관한 문제인지, 과연 어떤 문제인지를 보게 해주죠. 그러니 우리는 직접적인 체험보다 책, 특히 소설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으로 삶의 문제를 더욱 예리하게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됩니다. 미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거죠. 미국에 직접 가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죠.”


역시 평론가는 다르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진짜다) 하긴, 이렇게 통찰하고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내일 출근할 필요가 없었겠지.


아무튼 시간이 흐르도록 계속 책이 쓰이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책으로 나오고, 다큐멘터리로 나오고, 이 모든 일련의 흐름이 지속되는 것은 결국엔 인간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단 한 번뿐인 인생,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외면했던 사람들에게 저런 속사정이 있었겠구나’, ‘내가 그때 주인공처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라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부지런히 종이와 스크린 속에 존재하는 평행세계 속의 또 다른 ‘나’를 찾으며, 같이 공감하고, 웃고, 눈물 흘리다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면 더 ‘잘’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상영관 문턱을 넘어 현실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여러 가지 잡문을 엮은 책이다. 전쟁 중에 쓴 일기, 영화의 감독판 각본 등의 글들이 실려 있다. 사실 이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완독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일본어 지명과 용어들이 활개치고, 영화 각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들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도미’라는 극중인물이 있는데, 자꾸 생선이 생각나서 몰입할 수 없었다. 책 이름도 그렇고.) 오죽했으면 번역가가 이 책을 번역하기까지의 어려움만 구구절절 토로해 놓았을까. 그럼에도 후반부에 기재된 ‘도쿄 이야기’의 각본은 가슴 찡한 구석이 있었고, 그 외에도 중간중간 흥미로운 구절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구절.


“간단한 예로 전화를 거는 경우 극히 일반적인 형태를 말하면, 눈길을 주는 곳의 위치가 송화기보다 낮으면 상대가 윗사람, 높으면 아랫사람, 같은 높이면 동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전화를 할 때면, 항상 송화기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며 통화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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