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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Jan 07. 2018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를 읽고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 - 양돈선


1.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유명 개그맨이 즐겨하는 말이었다. 처음엔 생각 없이 웃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정말로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게 어때서? 그 사람들이 뭘 잘못했나?’ 싶었다. 물론 당사자는 어린 친구들에게 유머를 담은 조언을 던지려고 했던, 악의 없는 발언이었겠지만, 분명 누군가의 마음은 불편해졌을 것이다. 난 이 불편한 농담이 한국 사회의 치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천대하고, 정답은 ‘공부’, 딱 하나라고 강요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연스레 그런 환경에 물들어 똑같이 사고하고 공부했고, 대학 간판을 따져 관심도 없었던 전공을 선택했으며, 지금은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장님 몰래 다른 꿈을 꾸고 있다.


20대 중반 독일 함부르크에서 인턴 생활을 했었다. 거기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독일은 여러 면에서 한국과 달랐다. 인터넷은 느리고, 거주민 등록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리고,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다. 속이 터지도록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독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 불편함들을 조금씩 이해하고 더 나아가 동경하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 성숙한 시민의식, 건전한 사회문화, 사회 전방에 구축된 안전 시스템. 왜 독일이 선진국이고 EU의 리더인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여러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일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과연 나는 독일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또 무엇을 배웠으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2. 마이스터(Meister)와 닥터(Doctor)


서두에서 말했던 학업과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하자면,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서 인문계와 실업계 중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인문계와 자연과학계 학생들이 김나지움(일반 고등학교)을 거쳐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실업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이어서 직업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듀얼 시스템’을 통해 학교에서의 이론 공부와 기업체에서의 실습을 병행하며 기술력을 쌓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진로를 선택하든, 전문성을 기르면 각각 ‘닥터(Doctor : 박사)와 마이스터(Meister : 장인)로서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합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임금 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며 기술직은 대학 졸업자들이 가지지 못하는 기술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마땅히 존중받는다.


“독일은 학벌 사회가 아니라 자격 사회다. 학력 사회가 아니라 능력 사회다. 전문성이 대우를 받는 사회다. 독일에서 직업을 ‘베루프(Beruf)라고 하는 데, 사전에는 사명, 소명, 천직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직업의 의미를 넘어 신에게서 받은 소명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가구나 자동차 수리공, 열쇠공, 미장공들도 임금 수준이 높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굴뚝 청소부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아들에게까지 대를 잇고 있다."


또한 독일은 대학 진학률은 30% 내외로 낮은데, 그 낮은 입학생 중에서 23%만 학,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디플롬(Diplom)이나 마기스터(Magister)를 취득한다. 즉, 정말로 공부가 적성이 맞고 뜻이 있는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고, 취업의 수단으로써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단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보는 한국과는 정반대이다. (한국은 2015년 기준 대학 진학률 68%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독일에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든, 사시사철 사무실에서 일하든,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고졸 출신인지 대졸 출신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개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기준만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와 존중이 오고 가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겉치레는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합리적인 사회’인 셈이다.


3. 내게 돌아온다는 믿음


독일로 출국하기 전, 인터뷰 때 구두로 합의한 내 임금은 월 2000 유로였다. 당시 환율로 따져보면 한화로 약 260만원 정도 되었다. 인턴임을 고려했을 때 정말 파격적인 급여였다. 그래서 들뜬 마음을 품고 독일 땅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월급날, 명세서를 받은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 불쌍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에서 세금을 40%를 떼어간 것이었다. (하하) 억울했지만 눈물을 머금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 스트레스로 목과 어깨 근육에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 2개월간 마사지 치료를 받으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치료비가 거의 공짜였다. 외노자가 성실하게 지킨 납세의 의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독일에서 10년째 외국인 신분으로 머물고 있던 사장님도 거의 독일 국민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보장 서비스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병원비는 물론 자녀의 대학 교육비까지도 무상이라고 하셨다. 이 외에도 독일에는 실업급여, 연금, 육아지원 등 다양한 사회 복지 서비스가 잘 마련되어 있다.


“실업 상태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따른다. 교통비 50% 이상 할인, TV 시청료 면제, 전화비 할인, 연간 2회의 오페라 관람, 4회의 박물관 방문, 12회의 수영장 사용, 그 외에 아이가 있을 경우 연 2회의 동물원 방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이나 핀란드,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의 복지를 찬양하면서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은 그 모든 사회보장 혜택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보장의 수혜의 범위와 규모가 큰 만큼 개인과 기업은 높은 세금과 사회보장 보험료를 내야 한다. 독일 국민들도 통일세, 각종 보험료 등 40%에 육박하는 세금을 낸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사회적인 불평이나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납부한 세금들이 투명하게 운용되고,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도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사회보장 혜택으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구나’ 직접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국민과 국가가 서로를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를 바탕으로 좋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4. 내가 누리는 편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독일하면 비어, 맥주 아니던가. 첫 월급을 타자마자 독일 펍을 찾았다. 주문을 마치자 종업원이 내게 성의 없이 무언가를 던졌다. 맥주잔 받침대였다. 당황했고 불쾌했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막 던지는 건가…이런..개..ㅅ’ 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다른 테이블에 가서도 똑같이 맥주잔 받침대를 휙 휙 던지는 모습을 보고서 깨달았다. ‘아 이것이 독일식 서비스 !’


유럽의 최대 명절 부활절이 다가오자, 사장님께서 미리 장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일주일 치 정도의 식량을 미리 구매하였다. 부활절이 되자 정말 식당이든, 마트든, 아무런 가게든.. 도무지 문을 여는 곳이 없었다. 한국은 연휴 특수라며 더욱 붐비든가, 연휴 기간에도 변함없이 문을 연 가게들이 많은데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물류업계 쪽 일을 했었는데, 유럽 각지 파트너들이나 Trucker(트럭기사)들도 전부 영업하지 않고 쉬었다. 이 모습 또한 한국의 물류 업계 노동자는 연휴 때 물량이 폭발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즉, 그들에게 쉬는 날은 정말로 ‘모두가 다 같이 쉬는 날’이었던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가 아니라 손님은 고객일 뿐,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으며, 불필요하게 저자세로 굽히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근로자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한다. 사실,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도 ‘한국식 서비스’에 익숙한 나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들에겐 불편함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근로자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한을 제공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부차적인 편리함을 누릴 바엔, 모두가 함께 어느 정도 느리게, 조금은 불편해도 되는 것들은 감수하는 쪽을 선택하는 ‘배려하는 사회’인 것이다.

 

5.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필로그의 일부분을 아래와 같이 옮겨 보았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의 원인이 ‘제도의 불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제도적 시스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이나 참모진이 없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도로에 신호등이 없어서 신호를 안 지키는 것이 아니다. 안전지침이 없어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곳곳에 CCTV를 달고 치안을 강화해도 불법사건, 강력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이 무법자들 앞에서 수많은 법규, 감시, 처벌 조항 들은 무용지물이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중략) 제도가 사회를 이끌어 가지만, 그 제도를 만드는 주체와 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다. 국민의 잠재력이 사회자본, 즉 국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아직도 사회가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지도자들의 무능, 부패와 리더십 부재 탓이 크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은 썩었다, 판검사, 변호사, 공무원들도 비리가 많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촌지만 바란다, 경찰 세무 공무원은 뇌물만 챙긴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나, 우리다. 취직시켜 달라고, 좋은 자리 보내 달라고, 형량을 줄여 달라고, 소방 위생 단속 줄여 달라고 뇌물 주고 촌지 주어 부패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사회 제도의 불비 탓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도층 탓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 수준이 곧 국가의 수준이다. 이제는 우리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 신뢰와 정직, 배려와 양보, 소통과 타협을 밑천으로 삼아, 이를 곧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있었지만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상병이나 병장이 되었을 때, “나도 당하고 고생했으니, 너희들도 똑같이 당하고 고생해야 해” 라며, 자기가 받았던 부조리를 하등병에게 똑같이 되풀이하는 사람과 자신이 겪은 행위들이 옳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부조리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사람.


그렇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제도적 시스템 안에선 합리성과 공익, 장래를 위해 심사숙고하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의식을 객관화해보고 검열해야 한다. 이 작업을 멈추면 안 된다. 남보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내게 지위와 권력이 주어졌을 때, 기득권층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선택과 심판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먼저 더 나은 모습을 갖추고 보여줌으로써 남들도 함께 변화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의식을 검열해야 한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 되지 않도록.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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