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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Dec 24. 2017

"우리 인간은 아주 물리적인 존재입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고

아날로그의 반격 - 데이비드 색스


1. 아날로그의 반격


“미국 LP 앨범의 판매량이 2007년 99만 장에서 2015년 1200만 장으로 이상으로 늘었고 연간 성장률은 20퍼센트를 웃돌았다, … 내가 보기에 레코드판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좀 더 거시적인 현상이다. 바로 ‘아날로그의 반격’ 말이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매일매일 디지털화의 정점을 찍고 있는 현대에 아날로그적 요소들이 각 시장과 분야에서 부활 및 선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으로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과 같은 상품에 대해 다루고 있고 2부는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으로 인쇄물, 오프라인 매장, 일, 학교 등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아날로그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며 변화될 미래의 모습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멸종될 줄로만 알았던 아날로그 요소들이 사회 곳곳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적잖은 흥미를 유발했다. 특히나 이러한 현상의 근거로 내세우는 인간의 아날로그적 특성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똑같은 방식의 전개와 반복되는 내용으로 힘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1부에서 등장한 아날로그 콘텐츠에 비해 2부의 콘텐츠들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부만 보더라도 충분히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레코드판’ 챕터만 보아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 아날로그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2. 우리 인간은 아주 물리적인 존재입니다”


이 한 문장이 ‘아날로그의 반격’의 근본적인 원동력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의 몸 자체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날로그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사회 곳곳에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편의성과 효율성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물리적 실체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오감과 같은 물리적 욕구만은 충족시킬 수 없었다. 향초 매장에서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매장 직원에게 조언을 구하고, 계산하는 동안 매장을 둘러보며 분위기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는 이 과정을 인터넷 쇼핑은 제공할 수 없었다. 보드게임판에서 이루어지는 숨 막히는 눈빛 교환과 직접 상대와 대면하며 가지는 물리적 교류들을 온라인 게임은 제공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형성되는 친구 및 교사와의 관계, 공동체 의식 등을 사이버 강의는 제공할 수 없었다. 


책에서 말한 대로, 디지털화가 ‘편리함의 극치’를 제공한다면 아날로그는 ‘경험의 극치’를 제공하며 인간의 물리적 욕구들을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3. 꼭 곁에 없어야 소중함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왜 이제야 아날로그의 가치들이 재조명되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아날로그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것은 이들을 멸종 가까이 이끌었던 ‘디지털화’ 덕분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기존에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고스러운 과정’들이 간소화되고 삭제되면서 인간들은 뒤늦게 그 과정이 갖는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다.


레코드판을 예로 들자면, 그저 음악을 듣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했던 일련의 과정(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그리고 레코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이 사실 인간의 촉각과 시각, 청각을 자극 및 충족시키면서 즐거운 경험을 제공했었던 것이다. 기존에는 그저 음악을 듣기 위한 사전 작업일 뿐이라고만 여겨졌다. 하지만 물리적 실체가 전무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교해보니 사전 작업 그 이상의 요소로, 오감을 충족시켜주는 경험으로서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4. 인간의 행복은 ‘경험’에서 


아날로그가 ‘경험’의 가치를 부각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내용은 현재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소비성향의 변화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본다. 현재 젊은 세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소비성향 변화 중 하나는 ‘소유 중심’에서 ‘경험 중심’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유를 통해 남에게 보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스스로 경험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선 소유가 절대적인 미덕으로 여겨졌다(사실 아직도 많이 그렇다). 경제 성장에 발맞춰 열심히 일한 만큼 그에 맞는 보상을 얻을 수 있었고,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사회적 성공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그렇기에 모두들 더 많은 돈과 더 좋은 물질들을 추구하고 과시하며 만족감을 얻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끝이 없는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즉,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들은 순간의 쾌락으로만 그치고 마는 물질 및 소유 중심의 소비보다 추억이 되어 평생 동안 곱씹을 수 있는 여행, 이색 체험 등과 같은 경험 중심의 소비에 가치를 더 두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소유도 아날로그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100%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반격이든 경험 중심 소비로의 변화든,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즉 행복은 결국 ‘경험’에서 나온다는 성숙한 인식이 담겨있는 것 같아 둘 다 격하게 반기는 바이다



5. 중요한 것은 결국 '본질'


디지털화로 많은 아날로그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화가 주는 편리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감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이메일 대신 손편지를 보내며 업무 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아날로그는 ‘경험’과 ‘오감’을 충족시켜주는 매개체로서 이전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결국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가치 선택’의 문제이고 ‘공존’하게 될 것이다. 길가면서 편하게 음악을 듣고 싶다면 스마트폰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하면 되고, 집에서 느긋하게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며 음악을 듣고 싶다면 레코드판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본질’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그리고 마주하는 여러 선택의 상황에서 정말로 중요한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잘 붙잡고 살아간다면, 인간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면서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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