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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Mar 15. 2016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다

사회 초년 시절에 배운 것들 (3)

난 지독히도 내성적이다. 직장생활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으면서도 사람들과 첫 만남에서 먼저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힘을 끌어모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은 강의도 하고 회의 주관도 하는 걸 보면 회사가 사람 노릇 하게 만들긴 한 거 같다. 회사에서 교육비를 내라고 하면 얼마나 내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된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무서워했던 나


거의 30년이 다 된 이야기다. 대학교에 입학한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는데 과에서 한두 번 본 친구가 서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말을 시키면 어떻게 하지, 무슨 말을 하지$%!@$@#$#'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반갑게 웃으면서 아는 척을 했다. 순간 흠짓하면서 "어, 안녕!"하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강의실에 뭔가를 두고 왔다고 다시 학교로 올라와 버렸다. 


학교생활에서도 그다지 내 의견을 피력할 기회는 별로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겨우 디자인 시간에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여전히 버벅거리면서 말을 해서 교수님께 '너, 참 말 못 한다" 한 마디 들었던 기억만 있다. 원래 성격도 내성적인 데다가 발표 연습도 하지 않았으니 그림은 딱 나오지 않는가. 요즘은 학교에서도 팀 프로젝트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기회가 많고 입사 전에 프레젠테이션 연습도 많이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신입사원들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는 듯해서 다행이다 싶다. 



살아남으려면 보고를 해야 하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회사에 왔으니 일을 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리는 방법은 보고다. 내가 한 일이나 보고서를 요약해서 정확하게 개념만 전달하는 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보고서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걸 가져가서 팀장이나 부장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그리고 그 당시의 90년대의 리더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모 임원이, 팀장이 공장장에게 보고을 하는 데, 재떨이가 날랐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닐 때였다.


당시 보고는 요즘처럼 리더와 보고자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서를 들고 가서 정확하게 이 내용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자 함인지를 간단히 이야기하고 보고서를 리더의 책상 위에 있는 결재함에 두고 오는 식이었다. 리더의 마음에 들면 빨리 결재가 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함흥차사다. 함흥차사인 보고서를 마냥 기다리다 보면 일정은 안드로메다로 향해 출발한다. 반드시 일정이 늦어지기 전에 챙겨야 한다. 하지만 리더에게 가서 보고서 결재를 해달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시련이다. 


 몇 번을 혼잣말로 해보고 또 연습을 해도 팀장 앞에만 가면 왜 그리 떨렸던지...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서서히 대면 보고에 익숙해져 갔다. 팀장과 입씨름을 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전달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사 초기에 배운 건 거기까지다.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강의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우다


입사 후 약 6개월 정도 나는 정해진 팀도 없고 팀장도 없었다. 딱히 정해진 일도 없고, 뭔가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주어진 책상에 앉아서 책과 보고서만 읽고 있었다. 누가 지나가다가 "재미있어요?"하는 말에도 그냥 아주 밝게 "네!" 한마디만 하고는 끝이었다. 농담을 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다가가지도 않고..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지..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서 나름 잘 나가는 대리 한 분이 이런다.


"지현 씨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걸 못 봤네요. 그럼 사람들이 어려워할 건데..."


회사의 공식적인 대화가 보고서라면 비공식적 교류를 위해서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니... 누가 나에게 다가오겠는가.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과 사귀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걸 나는 몰랐다. 학교 다닐 때도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나에게 와주기를 바라기만 했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주변에서 뱅뱅 돌기만 했었다.


그 말을 들은 후 조금씩 내가 먼저 한 걸음 다가가는 연습을 했다. 쉽지 않았다. 단지 아침 인사나 안부를 묻는 것인데 그것도 힘들었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던 장벽이 사라져가는 게 느껴졌다. 같이 술을 마시러 가자고 초대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같이 모여서 회사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설계실 내 운동 클럽인 볼링클럽의 총무가 되었다. 회원들의 참석여부를 챙기고 사람들에게 회비를 받으러 좇아 다녔다. 회비 안내면 이자를 받는다고 협박도 하는 수준이 되었다. 함께 어울려서 볼링을 치고 저녁식사를 하고 조금씩 설계실의 정식 인원으로 받아들여져 갔다. 서울 출장도 다니면서 다른 지역 부서의 사람들과도 교류가 시작되었고, 창원에 있던 1, 2 공장 전체 단 2명 있는 대학 선배 언니들과도 인사를 하고 조언을 듣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과거의 나였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당시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 참 궁금하다. 지금 LG전자의 사장님인 조성진 사장님을 만나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들을 수 있을까.  


"그때 너, 사람도 아니었지!!!"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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