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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Apr 14. 2016

지옥훈련, Super A 프로젝트 참가기(2/2)

인간이 어떻게 단련되는지를 체험한 10개월

지옥훈련, Super A 프로젝트 참가기 1편 https://brunch.co.kr/@redica/19



TDR의 의미


프로젝트는 쉽지 않았다. 3월 즈음에 시작해서 약 10개월간 죽을 고생을 했다. 주말근무는 당연했고 매일 12시 이전에 퇴근한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휴가라고는 추석 때 이틀을 쉰 것이 모두였다. 프로젝트 중간쯤에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를 시작했다. 주인아저씨는 청과시장에서 경매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새벽에 출근을 하셨다. 몇 번 새벽에 출근하는 주인아저씨와 그 시간에 퇴근한 나는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프로젝트 끝나고 서울 발령을 받아서 6개월 만에 집을 비우는데, 주인아저씨의 눈 빛이 '나가서 다행이다'하는 듯했다. 


당시 프로젝트 룸을 TDR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Super A 프로젝트하는 사람들이 끼리는 Tear Drop Room이라고 들어가면 눈물 쏙 빠지게 고생하는 곳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하고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최종 그룹 전체 발표회로 끝내고 나니 11월이었다. 고생한 끝이 있는지 없는지 당시 서른도 되지 않은 내 얼굴에는 기미만 한 가득 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일하는 시간도 너무나 많이 길었지만 때가 되면 찾아오는 보고는 더 힘들었다. 진행되는 내용이 있으면 그 내용을 정리하느라, 진행 내용이 없으면 내용을 만들어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보고서 형식도 맞춰야 했고, 논리도 만들어야 했고, 로직이 맞는지, 성과나 효과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되었는지 열심히 했으나 보고를 하고 나면 늘 산더미 같은 일들이 새로 생겼다. 게다가 그룹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한다고 내놓으라고 하는 자료는 왜 그리 많은지... 프로젝트 멤버들 사이에서는 서울 본사팀에서 밤 12시에 전화해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퇴근하는지를 챙기는데 그때 전화를 받지 않으면 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프로젝트가 나에게 남긴 것


그렇게 프로젝트를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하고 나서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힘든 시간을 보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고 얼굴 가득 올라온 기미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주제를 선정하고 과제를 풀어내고, 실행하고 효과를 분석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것은 결국 능력이었다. 10개월간 써낸 보고서가 거짓말 더하지 않고 거의 한 트럭분은 될 거다. 매일 밤 보고서 문장을 다듬고, 결과를 엎어 치고 매치고, 보고서 순서를 바꿔가며 자료를 만들고, 보고하고 욕먹고 또 바꾸고.. 그렇게 약 1년을 보내고 나니 머릿속에 남은 것은 문제와 원인을 파악하는 능력, 해결방안을 찾고 과제를 선정하고, 그리고 실행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월등하게 길러졌다.


실제 프로젝트를 끝내고 돌아온 이후 보고서를 점검하고 도와주는 일이 많아졌고 스스로 쓰는 보고서의 질도 확실히 올라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교육을 받았다. 간단히는 보고서 자체를 쓰는 방법, 표를 어떻게 그리고, 표의 의미가 무엇인지, 언제 어떤 표와 그래프를 써야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는지에 대한 교육은 물론 문제 해결 방법론도 프로젝트 진행 순서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문제 원인을 분석하는 방법, 원인을 분석했으면 해결과제를 선정하는 방법, 과제를 실행하고 그 효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 등등 모든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길러진 것은 나 자신의 일에 대한 태도였다. 인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풀어내야 했고, 그도 안되면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설문을 만들고 조사하는 방법,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법, 사람들을 모아서 설명회를 하는 것, 윗 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방법 등등 정말로 단기간에 배우기에는 힘든 일들을 그 짧은 단기간 내 속성으로 익혀나갔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지 않으니 내성적인 나를 스스로 다그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리더라는 무거운 짐


약 25년의 직장생활 동안 이 프로젝트 기간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힘들기는 했지만 내 직장생활 중 두 번째쯤 되지 않을까 싶다.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긴 시간 일을 해야 해서 그랬던 것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실력도 없는 내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리더십이 무엇인지, 리더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했으니 나도 힘들었지만 팀원들도 힘들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거다. 


아니 리더로서 실수를 많이 했다. 팀원들을 포용하지 못해서 마음을 다치게 하기도 했고, 그들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고,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도 있었는데 앞으로만 치닫는 내 성향 때문에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부산 해운대 콘도에서 워크숍을 했으면서도 바로 앞 해변 모래사장을 밟아보지도 않고 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참 한심한 노릇이다.


지금 다시 그런 프로젝트를 하라고 한다면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갈 거다. 이제는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나에게 없기 때문에... 당시는 젊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렇게 뭐든 해냈고,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겁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어리석도록 무모한 행동을 하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나 귀중하기에 함부로 나를 던지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젊은 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은 꼭 자신을 통째로 던져 넣고 헤쳐나가 보라고. 끝까지 달려본 사람은 안다. 그 끝까지 달려간 뒤의 쾌감이 어떤지, 그 쾌감이 어떤 마약을 만들어내서 사람을 중독시키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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