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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Jul 10. 2016

나를 키운 많은 업무들 (1/2)

시키는 일을 했던 초년 시절..

25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직장은 월급을 공짜로 주지 않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일이 가치 없고 시간을 보내기만 해야 하는 일이라면 개인의 가치나 역량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건 이력서를 써보는 거다. 잠시 회사를 떠났을 때 무엇을 했는지 적어 본 이력서가 다섯 페이지가 넘었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일 중 어떤 것이 나를 성장시켰을까..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내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할 수는 없다. 신입사원부터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정말로 그렇게 일을 찾아서 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무언가 스스로 나서기보다는 덩달이 같이 따라서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했을 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은 그래도 그중 많은 일들이 나 스스로 처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다닌 시간이 엄청나게 많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직장 초년에 했던 일들은 그다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만큼 시간이 지난 일이고 또 그만큼 별 기여를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나 보다. 그래도 기억나는 일은 서울 본사의 상품기획팀과 설계실의 엔지니어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역할을 했었지만  일개 사원이 얼마나 기여를 했겠는가. 시키는 일이나 잘 하면 다행인 시절이었다. 그래도 깨알 같은 자랑을 하자면 서울에서 발령받아온 팀장이 팀원 중 내가 가장 속도로 빠르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칭찬을 하기는 했다. 


정작 나의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창원에서 Super A 활동을 하고 난 이후가 아닌가 싶다. 그때부터 일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보아야 하고, 어떻게 일을 풀어나가야 하고, 다른 조직의 지원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서서히 내 생각과 가치관을 일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서울 생활을 하면서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윗 분으로부터 담금질을 당하면서, 그제야 스스로 일을 만들고 해 나가는 수준으로 발전을 한 것 같다. 


일을 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관리해야 하는 범위가 바뀌면서 생각의 틀도 달라졌다. 세탁기설계실에 있을 때는 기껏해야 세탁기공장과 서울 본사의 상품기획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공장 전체를 담당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창원 2 공장 전체가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는 각 지역의 모든 공장, 모든 인원에 대한 인사/복리후생을 담당하면서 일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를 어떻게 잘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도 길러지기 시작했으니까.


긴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성장을 위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능력을 키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을 통한 거다. 그런 만큼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서울 본사에서 인사일을 시작할 때는 여성인재 개발이라는 한정된 일을 했지만 1년 뒤 팀이 해체되고 부서를 옮겨 LG전자의 복리후생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200억의 주택자금을 각 공장별로 배분하는 일, 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를 변경하는 일, IMF사태 시대에는 복리후생 제도를 축소하는 일, 노조와의 임금협상, 연중 최고의 우수인재를 가려내서 포상하는 LG인상을 운영하는 등, 어떻게 혼자서 다 담당했는지 모를 정도의 일을 했다.


혼자 남아 일을 하는 밤에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변모하고 있던 여의도광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이메일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던 때라 각 공장에 자료를 종이문서로 보내기 위해 각 층마다 뛰어다니면서 복사를 하는 통에 모든 층의 복사기를 고장내기도 했다. 생각보다 녹녹지 않았던 서울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메일에 담아 예전 같이 근무했던 창원 세탁기설계실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창원 동료들은 내 이메일에 창원 자리가 아직도 있다는 등 흰소리로 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때 당시는 모두가 그렇게 일을 하던 시기였다. 미치듯이 그렇게 일을 했다. 회사를 떠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잘 하면 되는 시기였다. 물론 지금은 나 조차도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께 어느 분과 통화를 하니 요즘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구조조정 이야기가 한창이라 뒤숭숭한 울산에서는 몇 년치의  퇴직위로금을 주면서 사람을 내보낸단다. 서울 근무할 때 IMF사태로 한창 한국이 흔들리던 시대였다. TV에서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울음바다가 되는 장면이 매일 뉴스로 등장했다. 하지만 대기업 본사는 명예퇴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것은 조금은 딴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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