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행복코치 Nov 29. 2016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말로만 듣던 서울, 한 번 가 보자!

한참을 돌아왔다. 창원에서 겪은 Super A 프로젝트 이야기를 끝으로 한 동안 나 자신의 직장생활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다시 내 직장 스토리로 돌아와 보자.


Super A 프로젝트, 그리고 서울 근무 결정


1995년 창원 2 공장 Super A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울 본사로 출장을 갈 일이 많아졌다. 여성들만으로 팀을 만들었는데 그 멤버들의 수준이 도토리 키재기였다. 나라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LG전자 내에서도 그렇고 여사원들을 그렇게 많이 육성하지 않았었다. 여성 프로젝트 리더는 사원 선임, 대리급, 아니면 겨우 초급 과장 정도였다. 그런데 LG그룹의 문제 해결 역량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실제 조직 내 성과도 만들겠다는 Super A 프로젝트의 목표에 따라 프로젝트 수준은 너무 높았다.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한동안 지켜봐도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프로젝트 지원팀에서 다방면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 본사로 불러서 주제 선정을 위한 워크숍도 하고, 본사 여성인재개발팀 주관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그런 중에 서울 본사의 여성인재개발팀에서 나를 눈여겨봤었나 보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에 서울 본사 여성인재개발팀에서 근무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한 번쯤은 서울생활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창원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계실장님 이하 많은 분들이 말렸다. '가봤자 견디기 힘들다', '여자가 어디를 가느냐', '설계실 다른 프로젝트를 해라', '설계실이 싫으면 창원 인사팀에서 일하라'는 제의도 있었다. 그런데 은근히 한 고집하는 성격인지라 간곡히 거절을 하고 서울로 가기로 결정했다.


떠나는 날 환송회에서 설계실장님은 "네가 남자였으면 한 대 쳤을 거다"라는 말로 섭섭함을 표현하셨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 하는 착각(?)을 하게 했다. 그런 말을 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몰랐던 사실은, 은근히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남사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냥 느낌이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이는 서울로 나를 만나러 오기도 했다. 그 당시에서는 왜 나를 만나러 왔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사람의 마음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내가 문제가 있었던 거다.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결혼을 한 게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일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발로 끝난 서울과 관련된 과거 사건들


서울 근무 에피소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LG전자에서도 인재개발을 위해 경력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도입을 하던 시기였다. 요즘은 시스템으로 하지만 당시에는 A3 정도 크기의 좀 두꺼운 종이에 목표를 수립하고 연말에는 같은 종이를 다시 받아서 결과를 적어서 제출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경력개발 희망사항을 적도록 되어 있었는데 철없던 당시에 당당하게 서울 근무를 하고 싶다고 적어냈다. 그다음 날 당장 인사부로 호출을 당했다. 경력개발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서울 근무 한 번 해 보고 싶어요 하고 적은 것이 사달이 났다. 불려 가서 면담하고 부서장에게 보고 되고… 뭐 그런 수순이었다. 서울 가겠다고 평가지에 썼다가 인사부에서 면담했다고 했더니 '너 미쳤냐?'는 잔소리부터 멍한 표정까지 선배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참 멋모르고 철없이 날뛰던 시기였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서 또 다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LG전자에서 일반인 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LS연구소라는 곳이 있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서울 근무를 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개인적인 연락이었고 생각을 할 시간을 얻은 후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는데, 이후 내부 사정으로 인원 충원이 보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불발로 끝났다. 그리고서는 서울 근무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서울 본사 근무 발령이 났다.


세상일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그렇게 쉽게 결정된 서울 근무는 참 어렵고도 힘들었다. 사람도 힘들고 일도 힘들고, 이렇게 힘들지 모르고 결정한 나 자신도 미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회사일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이 지구 상의 종 중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것이 인간이라는 종이라는 걸 다시 몸소 체험하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세상 일은 그런 것 같다. 


안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아도, 될 일은 내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풀린다는 것.

그리고 늘 바라던 것보다는 바라지 않던,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순간순간 아슬아슬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허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