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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Feb 07. 2016

절망으로 치달을 때 날아온 취업추천서 한 장 #2

[부제] 25년 직장생활 좌충우돌 기행기

"나 이력서 한 번 써 본다고 할까?"


단짝 친구 육인방과 함께 앉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물었다. 


친구들, 이구동성으로


"그래, 그렇게 해 봐."


원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리고 잘 되면 좋고 안되어도 경험은 쌓이니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교수님께 찾아가서 원서를 쓰고 싶다고 했고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원서, 그리고 어색한 내용들. 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그 뒤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일정을  통보받았다.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 지도교수님께서  이런저런 것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세탁기설계실이니 섬유에 대해서, 오염의 제거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한 번은  훑어보라고 하시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들도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한 번 살펴보라고 하셨겠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면접 질문 중에 오염 프로세스를 설명하라는 내용이 있기는 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면접 대상으로 선발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나 이외에 여러 명이 면접을 보겠다고 해서 그들 중 누구를 면접에 보낼 것인지를 교수님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셨다고 한다. 당시 나는 전임강사 한 분의 프로젝트,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돕고 있었다. 요즘은 박사학위가 있어도 전임강사가 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학위가 없어도 전임강사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만큼 인재들이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은 학력 인플레이션이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분이 아주 강력하게 나를 추천했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돕는 것을 보면 괜찮은 학생이라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었다고. 지금은 모교의 교수님이 되신  그분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면접 당일, 나와 또 다른 동기 한 명, 이렇게 둘이서 나란히 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향했다. 서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건성건성 대답을 했기에 기억에 남지 않았나...


금성사 창원 2 공장에 도착해서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갓 입사한 인사팀 팀원 한 사람이 노란 작업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인사팀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처음 들어가보는 회사 사무실, 한 가운데 가죽 응접세트가 놓여있고 한 분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입사원은 면접이 처음이라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처음에는  자기소개를 하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질문을 할 거니까 그냥 대답하면 돼요.'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소개를 뭘로 할 건지를 짜깁기 한다고 머리 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슬쩍 훔쳐본 동기의 얼굴은 나 보다는 평온해 보었다. 더 당당하고 침착해 보였다.


면접관은 세분이었다. 인사팀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그분이 바로 면접관이었고, 세탁기 설계실장님, 그리고 한 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횡설수설 늘어놓고 나왔다. 면접을 해보면 알겠지만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질문을 받으면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


돌아오는 길에 동기에게 물어봤다.


"면접 어땠어?"


"그냥 그랬어. 별로 물어보지 않던데?"


그 친구의 덤덤한 대답이 참 많이 부러웠다. 돌아오는 차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잘 할걸, 조금 더 준비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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